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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186
한자 石橋里
영어음역 Seokgyo-ri
이칭/별칭 돌다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1.91㎢
총인구(남, 여) 437명[남자 195명, 여자 242명]
가구수 197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마을 앞에 돌다리가 있어 돌다리 또는 석교(石橋)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김제군 연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석리·후석리·양청리·신리 일부, 만경군 남일면 부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석교리(石橋里)라 하고 김제군 백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남동쪽으로 신평천(新坪川)이 흐르는 평야 지역이다.

[현황]

2009년 11월 30일 현재 면적은 1.91㎢이며, 총 197가구에 437명[남자 195명, 여자 24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 전석(前石)·후석(後石)·대촌(大村)·부석(富石)·석신(石新)·양청(兩靑)·신석 등이 있다. 전석은 석교리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초기 제주고씨가 터를 잡으면서 형성되었다. 예전에는 신평천을 타고 들어온 배가 정박하기도 했다. 마을 앞에 방죽[연못]이 있어 방죽안이라고도 한다.

후석은 조선 말기 만경군 남일면 부흥리에 속했던 지역으로, 조선 초기부터 김해김씨가 터를 잡으면서 김해김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석교 뒤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후석이라 하였고, 마을이 돌산 뒤에 있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대촌은 전석 남쪽에 있는 마을로 큰마을·큰멀이라고도 한다. 신평천 하류에 수교 제 수문이 축조되기 전에는 바닷물이 거꾸로 밀려왔기 때문에 억수동 또는 역수동이라 하였고, 바닷물이 드나들 때 배가 떴다 하여 뜬배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돔배라고도 하였다. 제주고씨, 파평윤씨, 함양박씨가 살고 있다.

부석은 전석의 동쪽, 대촌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1940년경 전석에서 분리되면서 부자 마을이 되라는 뜻에서 부석이라 하였다. 마을 뒤쪽에는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던 무제봉이 있다. 제주고씨, 파평윤씨, 함양박씨가 살고 있다. 석신은 석교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파평윤씨, 동래정씨, 천씨가 살고 있다.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아래신리라고도 한다.

양청은 석교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최근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대청(垈靑)과 앙청(仰靑)을 통합하여 양청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호종공신인 윤찬(尹瓚)의 후손들이 400여 년간 대를 이어 세거하고고 있다.

문화재로는 호종공신 윤찬, 의병장 박정영, 병자호란 때 전사한 윤여임(尹汝任)백선남(白善南), 윤여임의 동생 윤여인(尹汝仁)을 기리는 청곡사(靑谷祠)와 함께 김제시 신곡동백산면 석교리에서 흐르는 신평천에 놓인 석교(石橋)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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