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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263
한자 平沙里
영어음역 Pyeongsa-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평사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승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3.10㎢
총인구(남, 여) 598명[남자 277명, 여자 321명]
가구수 269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마을 지형이 가까이서 보면 평사낙안(平沙落雁), 멀리서 보면 금환낙지(金環落地) 형국이므로 평사리(平沙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금구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산리·등용리·주자리·대하리·송내리 각 일부, 초처면 성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평사리라 하고 김제군 하리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하리면이 봉남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봉남면 평사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북서쪽에 금구천(金溝川)이 흐르는 평야 지역으로, 마을 주변으로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봉남면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9월 현재 면적은 3.10㎢이며, 총 269가구에 598명[남자 277명, 여자 32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밭 0.19㎢, 논 2.13㎢이다. 동쪽으로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와 이웃하고, 지방도 712호선이 금산사IC로 연결된다.

자연마을로 평산·신기·등용·주자·화암 등이 있다. 평산은 등용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던 큰 부자들만 모여 살았다는 등경마을이 없어지고, 250년 전 지금의 자리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웃마을인 등용이나 노적은 낮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평산은 그 사이의 평야 지대에 자리 잡았으므로 유래된 이름이다.

신기[새터]는 등용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평산에서 신기 쪽으로 이어진 능선 일대에 큰 부자들이 많이 모여 살아, 길가에 노적가리를 많이 쌓아 두었으므로 노적리, 또 옛날 이 일대에 갈대가 무성하게 우거져 노정리라고도 한다.

등용은 1696년(숙종 22) 금구온씨 온효겸이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등경에서 살다가 마을이 폐허가 되자 옮겨 온 뒤로 형성된 마을이다. 구성산(九城山)[487.6m] 줄기가 굽이쳐 꿈틀거리며 내려오다가 용반에서 힘을 모아 주자에서 여의주를 물고, 등용에서 하늘로 오른다는 산세지리설과 산수오행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등경은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어서 잘사는 사람들의 집이 서울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자는 등용 남쪽에 있는 마을로, 구성산 줄기가 굽이쳐 꿈틀거리며 내려오다가 기룡에서 일어나 용반에서 힘을 모아 주자에서 여의주를 물고, 등용에서 하늘로 오른다는 산세지리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주자는 구슬, 즉 여의주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구슬이 흩어져 있을 때는 굴러다니다 부딪쳐서 소리가 시끄러웠는데, 김제와 원평을 잇는 도로가 나면서 부근 마을들까지도 조용해졌다고 한다. 도로가 구슬이 멋대로 구르지 못하게 하는 실의 구실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암은 주자 서쪽에 있는 마을로, 처음에는 함보가 있는 들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함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회사가 채금선을 들이대고 봉남면 일대의 들을 마구 파헤치고 다닐 때 함보도 채금 구역이 되면서 하는 수 없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런데 금을 캐기 위해 이 일대의 땅을 파자 밑바닥에 꽃 모양의 바위가 깔려 있어 이름을 화암으로 고치고, 예전 들 가운데 있던 함보를 구함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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