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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469
한자 金溝縣
영어음역 Geumgu-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덕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757년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757년
폐지연도/일시 1895년연표보기

[정의]

75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후 백제 영토는 685년(신문왕 5)까지 신라식 4주 3소경 및 다수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그와 함께 각 고을의 이름도 당나라가 중국식으로 고쳤던 주·현의 이름이 복구되었지만, 상당수가 점차 신라화하였다. 신라는 757년(경덕왕 16)에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걸쳐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고쳤는데, 그때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금구현(金溝縣)으로 개칭되어 전주에 영속되었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백제의 구지지산현금구현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670년에 발간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와 1759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 1789년의 『호구총수(戶口總數)』, 1864년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금구현에 대한 기록과 관할 구역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

금구현의 관할 구역은 동도면, 서도면·일북리·이북리, 낙양면, 하서면, 하리면, 이북면, 일북면, 남면, 수류면, 초처면 등 10면 111리였다. 별호는 봉산(鳳山)이었다.

[변천]

삼국시대에 백제의 구지지산현이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당산현(唐山縣)으로 고쳐 노산주(魯山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757년 통일신라의 지방제도 정비로 금구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주의 영현으로 삼았다. 1170년(의종 24) 이의방(李義方)의 외향이라 하여 현으로 승격시키고 거야현(巨野縣)을 속현으로 편입시켰으며, 조선시대에는 현령이 파견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 개편으로 군으로 바뀌어 전주부에 속했다가, 1896년 전라북도에 속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하여 금구군은 폐지된 뒤 면으로 격하되어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현황]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황산면·봉남면·금산면 일대이다. 이곳 모악산에 후백제의 견훤이 유폐되었던 금산사(金山寺)가 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원신, 김언공 등이 남하하는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금구대첩(金溝大捷)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의의와 평가]

금구현은 삼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제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며 발전해 왔으며, 특히 미륵신앙의 모태인 금산사와 정유재란 때의 금구대첩 등 정신문화와 호국 정신이 깃든 곳으로서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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