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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 만세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493
한자 萬頃萬歲運動
영어의미역 Mangyeong Independence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 4월 4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 4월 4일
발생(시작)장소 만경공립보통학교 지도보기
관련인물/단체 임창무|오연길|장택석|이석재|문용기|김제경찰서

[정의]

1919년 4월 4일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던 만경공립보통학교 훈도와 생도들이 일으킨 만세 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적]

만경 만세운동은 3·1운동을 통해 조선 독립의 움직임이 거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때 만경면 지사들도 이에 동참하여 지역에서 조선 독립의 열망을 고취하기 위해 일어났다.

[발단]

만경공립보통학교의 훈도 임창무·오연길·장택석·이석재 등은 일찍부터 생도들에게 독립 정신을 고취하였고, 이웃에 있는 익산군의 애국지사 문용기 등과도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만경장날이던 4월 4일 정오경 임창무가 3·4학년 생도를 교정에 모아 놓고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독립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각지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데 함께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한 뒤 태극기를 들고 앞장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경과]

생도 100여 명이 대열을 지어 만세를 부르며 임창무의 뒤를 따랐다. 행렬이 시장에 이를 무렵 면민 수백 명이 만세를 부르면서 동조하여 시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순찰 중이던 순사와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하였지만, 만세 대열은 한참 동안 시장을 돌며 시위행진을 펼쳤다.

[결과]

4월 4일 오후 김제경찰서 무장대가 출동하여 폭력 진압을 벌인 탓에 대열은 해산되고 임창무 등 주동 인물들은 검속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만경 만세운동은 무장 경찰의 폭력 때문에 더는 진전되지 못하고 진압되었지만, 이 사건 이후에도 만경면에서의 구국 활동은 꾸준하게 진행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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