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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릉두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693
한자 杜陵杜氏
영어의미역 Dureung Du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집필자 김병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집성촌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입향시기/ 연도 고려 목종
성씨시조 두경령
입향시조 두경령

[정의]

두경령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연원]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 두경령(杜慶寧)은 송(宋)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내다가 고려시대에 만경(萬頃)을 식읍지로 하사받았다. 만경은 백제 때는 두내산현(豆乃山縣)이라 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만경현(萬頃縣)이라 하였다. 고려 문종 때 현내 주산(主山)에 두씨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혹은 두릉(杜陵)이라 부른 데서 후손들이 두릉을 본관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태종 때 다시 만경현으로 불렀으며 1895년에 만경군이 되었다.

[입향경위]

두경령이 송나라 병부상서로 있을 때 황위, 즉 세자 계승 문제로 논란이 일어나자 정론을 간하였으나 셋째 아들인 진종(眞宗)이 즉위하자 화를 입고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임지로 가던 중 배가 풍랑을 만나 궁지도(宮地島), 즉 지금의 고군산 열도[당시는 고군산 열도가 만경현에 예속됨]에 표착하여 세거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두릉두씨의 시조이자 김제 지역의 입향조가 되었다.

[현황]

두경령의 6세손 두경승(杜景升)은 만경에 세거하다가 1700년경부터 세(勢)에 밀려 금구(金溝)로 완전 이거하였으며, 산소(山所)도 망배(望拜)만 해오다가 일제강점기부터 묘소도 수호하고 시제도 지내고 있다. 이름을 떨친 후손으로는 고려시대에 문하시중(門下侍中)·중서령(中書令)에 이른 두경승, 조선시대에 이르러 13세손으로 도총관을 지낸 두양필(杜良弼), 14세손으로 진무일등공신이었던 두기문(杜起文) 등이 있다. 현재 김제시 만경읍에 세거하는 후손들은 모두 외지에서 이거해 온 사람들로,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김제시 관내에 거주하는 두릉두씨는 62가구 239명으로 나타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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