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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771
한자 金庠基
영어음역 Gim Sanggi
이칭/별칭 동빈(東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학자|역사학자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수각마을
성별
생년 1901년연표보기
몰년 1977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정의]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학자이자 역사학자.

[개설]

김상기(金庠基)의 아호는 동빈(東濱)으로, 아버지는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김연익(金然翊)이다. 김연익은 백산면 일대에서 이름난 토박이로 학행(學行)과 행실이 남달랐으며, 덕망과 신의를 갖추었던 것으로 전한다. 김상기(金庠基)는 한국 동양사학의 기초를 세운 대표적인 동양사학자이자 한학자이다.

[활동사항]

김상기최보열(崔輔烈)최병심(崔秉心)의 문하에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926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1945년까지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유(敎諭)와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를 지내고, 1945년부터 경성대학 법문학부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2년에서 1957년까지 문리과대학 학장을 지냈고, 그 뒤 동아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였다. 1962년 군사 정권의 임시 특례법에 의하여 정년퇴직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교육계에 있으면서 많은 인재를 육성하였다.

김상기는 특히 동양사 연구에 주력하여 1934년 동료들과 같이 진단학회를 조직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려고 하였다. 또한 서지학회[1945]와 중국학회[1962]·백산학회[1966]·한국고고학협회[1967] 등을 조직하거나 혹은 초대 회장을 지냈다. 학술원 회원[1954~1977]·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서 활동하였고, 문화재보존위원회·독립기념사업위원회·민족문화추진위원회 등 학술·문화관계 위원회의 위원 또는 위원장을 지냈다.

김상기는 근엄하면서도 제자들을 대할 때는 인자하여 제자들의 흠모를 받았다. 국내 사학자 중에 그의 훈도(薰陶)를 거친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전해종(全海宗)·고병익(高柄翊)·이용범(李龍範)·함홍근(咸洪根)·민두기(閔斗基) 등은 그가 개척한 동양사학을 계승한 학자들이다.

[학문과 사상]

김상기의 논저에서 주목되는 점은 넓은 시야이다. 동양사에 주력하였으나 한국사를 도외시하고 중국사에 치중한 것이 아니고, 한국사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그 폭을 중국사에까지 넓힌 것이라고 하겠다. 한민족의 기원을 거시적으로 검토한 「한예맥이동고(韓濊貊移動考)」와 「동이(東夷)와 회이(淮夷)·서융(徐戎)에 대하여」는 중국의 고대 문헌과 사료를 활용한 것으로, 사학자로서의 문헌 비판과 철저한 사료 고증이 논리 전개에 수반되어 있다. 을지문덕(乙支文德)·발해 태조(渤海太祖)·장보고(張保皐)·강감찬(姜邯贊)·정몽주(鄭夢周)·김유신(金庾信)·성삼문(成三問)·윤관(尹瓘) 등 위인에 관한 논문과 전기에서는 그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동학과 동학란』·『중국고대사강요(中國古代史綱要)』·『동방문화교류사논고』·『고려시대사』·『(역주) 고려사』·『동방문화사논고』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갈문왕고(葛文王考)」·「독서당고(讀書堂考)」·「태한전설(太旱傳說)의 유래에 대하여」 등이 있다. 불교와 불교 미술에 관한 논저도 다수 있으며, 많은 해제와 서문 및 비문·명문(銘文) 등을 남겼다.

[상훈과 추모]

1961년 서울특별시 공로표창을 받았고, 1962년에 학술원상과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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