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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777
한자 金瓘
영어음역 Gim Gwan
이칭/별칭 종동(終同),영중(瑩中),묵재(默齋),공양(恭襄)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25년연표보기
몰년 1485년연표보기
본관 언양
대표관직 전라도관찰사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영중(瑩中), 호는 묵재(默齋), 초명은 종동(終同). 아버지는 선천군사(宣川郡事)를 지낸 김숙보(金叔甫)이고, 어머니는 서씨(徐氏), 처는 금이(今伊)이다.

[활동사항]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장사꾼의 비단을 절취한 사건에 연루되어 황해도 경천참(敬天站)으로 귀양을 갔다가 그곳에서 역리(驛吏)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어머니의 간청으로 귀양에서 풀려났다. 1461년(세조 7) 도관좌랑(都官左郞)으로 대마도경차관 김치원(金致元)의 종사관이 되어 대마도에 다녀왔으며, 전라도경차관을 거쳐 1465년(세조 11) 예조정랑에 이르렀다.

1467년(세조 13)에 일어난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의 종사관으로 공을 세워 종부시정(宗簿寺正)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강원도관찰사로 있을 때, 낙산사를 조성하며 민간에서 지나치게 비용을 거둬들였다는 혐의를 받아 부호군으로 좌천되었으나 뒤에 낙산사 조성 공사가 무사히 끝나자 도리어 논상(論賞)되었다.

1469년(예종 1)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황해도관찰사로 전임되었으나 도적을 잡지 못해 체직되었다. 1475년(성종 6) 영안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479년(성종 10) 동지중추부사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다. 1481년 전주부윤을 지내고, 1483년 사은사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84년 전라도관찰사에 이르렀다.

[상훈과 추모]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시호는 공양(恭襄)이다. 현재 김관은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거야마을의 육송사(六松祠)에서 배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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