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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871
한자 浮雪居士
영어음역 Buseolgeosa
이칭/별칭 진광세(陳光世),의상(宜祥)
분야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채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망해사 창건자
출신지 경상북도 경주시
성별

[정의]

삼국시대 김제에서 활동한 승려.

[가계]

성은 진(陳),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이다.

[활동사항]

부설은 경주 출신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났다. 20세가 되던 해에 불국사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찾아가 출가하게 되었다. 일심으로 인내하는 사찰 생활과 부처의 모습을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하여 염불하고 불경을 읽는 등 수도 생활에 정진하여 경학(經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날마다 그의 명성은 높아지게 되었으며 경서에 밝고 글을 잘 짓는 덕이 높은 스님까지도 부설을 가리켜서 불법의 상량감이라 하여 존경하고 사모하는 사람이 많았다.

부설은 불법에 정진하다 법우인 영희(靈熙)·영조(靈照)와 함께 지리산과 천관산(天冠山)·능가산(楞伽山) 등지에서 수 년 동안 수도한 후에 문수도량(文殊道場)을 순례하기 위하여 오대산으로 가던 중,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에 이르러 구무원(仇無寃)이라는 불교신자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당시 구무원에게는 나이 20세의 묘화(妙花)라는 무남독녀가 있었는데 말을 못 하는 벙어리였다. 이러한 묘화부설을 보더니 갑자기 말문이 터져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묘화는, 부설 스님과 소녀는 전생(前生)에도 인연이 있었고, 금생(今生)에도 인연이 있으니 인과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 바로 불법이라 하면서 전생과 금생 그리고 후생의 삼생연분(三生緣分)을 이제야 만났으니 죽기를 맹세하고 부설을 남편으로 섬기겠다고 하였다. 처음에 부설이 승려의 본분을 들어 이를 거절하자 묘화는 자살을 기도하였다. 이에 부설도 자작자수(自作自受)와 인(因)으로 하여금 과(果)를 따르는 법이라며 스스로 거사라 자칭하고 묘화의 집에 머무르기로 하였으며,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례식을 올렸다.

부설거사묘화 부인은 15년을 살면서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은 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부인에게 맡기고 백강 변에 초가를 짓고 참선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이 지금의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뒤에 영희와 영조 두 대사가 부설거사를 찾아와 희롱적인 태도를 보이자, 부설거사는 태연히 “신령스런 빛이 홀로 나타나 뿌리와 티끌을 멀리 벗어 버리고 몸에 본성의 진상이 삶과 죽음을 따라서 옮겨 흐르는 것은 병이 깨어져 부서지는 것과 같으며 진성은 본래 신통하고 영묘하고 밝음이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은 물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대들은 높은 스승을 두루 찾았고 오랫동안 총림에서 세월을 보냈는데 어찌 생(生)과 멸(滅)을 자비심으로 돌보고 보호하며 진상(眞常)을 삼고 환화(幻化)를 공(空)으로 하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본성을 지키지 못하는가. 다가오는 업(業)에 자유가 없음을 증험하고자 하니 상심(常心)이 평등한가 평등하지 못 한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법을 한 뒤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入寂)하였다.

영희와 영조는 부설거사를 다비(茶毘)하여 사리를 변산 묘적봉(妙寂峰) 남쪽에 안치하였다. 부설거사의 아들과 딸은 그 때 출가하여 수도자의 길을 걸었으며, 부인 묘화는 110세까지 살다가 죽기 전에 집을 보시하여 절을 만들었다고 한다. 부설거사에 관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 편찬한 『영허대사집(暎虛大師集)』 안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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