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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906
한자 宋日中
영어음역 Song Iljung
이칭/별칭 문명(文明),송재(松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서예가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성별
생년 1632년연표보기
몰년 1717년연표보기
본관 여산
대표관직 사옹원봉사

[정의]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서예가.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문명(文明), 호는 송재(松齋).

[활동사항]

송일중(宋日中)은 1632년(인조 10)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두악산에서 태어났다. 8세 때에 사물의 정사를 판단하고 시문을 엮으니, 김제군수로 재임하고 있던 창강(滄江) 조속(趙涑)송일중의 재질을 인정하여 문하생으로 받아들여 경서를 비롯하여 당(唐)·송(宋)의 역사와 제자백가를 가르쳤다. 이후 서법을 공부하여 초서(草書)와 예서(隸書), 해서(楷書) 등 오체에 모두 독보적인 경지에 오르며 대명필가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임양군(臨陽君) 이환(李桓)이 중국 북경에 송일중의 글씨를 가지고 갔는데, 중국 사람들이 그 글씨를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중국 황제도 보고는 크게 칭찬했으며, 숙종은 ‘송백능한(松柏凌寒)’이라는 글귀를 쓰게 한 후 후한 상을 내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1669년(현종 10)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의 천거로 선원능참봉(璿源陵參奉)을 지냈다. 1682년(숙종 8) 장사랑북부참봉(將仕郞北部參奉)으로 연가종사승사통사랑(蓮加從仕承仕通事郞)이 되었고, 그 다음해 가무공선교랑(加務工宣敎郞)을 역임하였다. 1684년(숙종 10) 가승훈랑력(加承訓郞歷)에서 사옹원봉사를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와 벼슬을 일체 사양하고 학덕을 쌓는 데만 전력하였다. 82세 때인 1713년(숙종 39) 통정대부에 오르고, 1715년(숙종 41) 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을 제수 받았다.

[저술 및 작품]

해인사 현판과 흥복사(興福寺) 현액, 김제동헌(金堤東軒)의 상량문, 전주감영의 간검당(看劍堂)·제남정(濟南亭)·호경루(護慶樓) 등의 현액을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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