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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053
한자 貯水池
영어의미역 Reservoir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상민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개설]

전통적인 관개 수리 시설은 제(堤)·언(堰)·보(洑)로, 제는 산 가까이에 저수하고, 언은 바다 가까이에서 방수하며, 보는 들 가까이에서 인수(引水)하는 시설이다. 현재에는 그 의미가 약간 바뀌어서 산지나 구릉지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두는 시설을 제 또는 제언(堤堰)이라고 한다. 보는 하천 상류의 계류에 소규모의 둑을 쌓고 완경사의 수로를 경유하여 곡저 평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을 말한다.

전자의 경우는 곡저 평야와 그 주변 하도(河道) 사이의 비고(比高)가 상당하기 때문에 주변의 강에서 논으로 수로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들이기가 불가능하여, 물을 직접 퍼 올려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고안이다. 보는 논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이어서 의미의 변화가 없다. 언은 바닷물의 침수를 막기 위한 시설이며, 언을 쌓아 만든 논을 언전(堰田)이라고 하였으나, 현재는 각각 방조제, 간척답으로 바꾸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저수지라고 할 때에는 제와 보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변천]

김제시는 호남평야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삼한시대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논농사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물의 조절이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홍수를 방지하고 가뭄에 대비하기 위한 수리 시설이 갖추어져 왔다. 호남평야 지역에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랜 저수지는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그 유지(遺址)가 남아있는 벽골제(碧骨堤)이다.

벽골제는 330년(백제 비류왕 27)에 처음 둑이 쌓였고, 그 후 조선시대까지 여러 번 증·개축되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동진농지개량조합에서 둑을 농지 관개용 간선 수로로 개조하여, 둑의 폭을 종단하고 그 가운데로 수로를 만들어 농업용수를 흐르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김제군조에는 “벽골제는 군의 남쪽 15리에 있고 그 수원은 셋이 있는데, 하나는 금구면 모악산의 북쪽에 나오며, 하나는 태인현의 상두산에서 나와 벽골제에서 만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현재의 지명으로 바꾸면, 벽골제모악산의 북쪽의 매봉산에서 발원한 두월천모악산 남쪽 및 상두산에 발원한 원평천의 물을 가두기 위한 둑으로, 그 집수역(集水域)이 넓어 김제시 신월동부량면 용성리, 월승리에 걸친 넓은 저수 면적을 차지하고, 몽리구역도 넓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김제시의 전통 수리 시설은 중요한 농업 유산으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200여 년 이상 역할을 다 해온 것들도 있다. 이 가운데 검산제(劍山堤)는 현재 김제시의 상수도 수원지로 농업용수로는 이용되지 않는다. 특히 능제(菱堤)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만경현조에도 능제라고 기록된 오래된 제로 본래 주변 구릉지의 물을 가두는 재래지(在來池)였으나, 1930년에 확장되어 운암호의 물을 받아 저장하는 양수 저수지가 되었다. 현재 김제시에 있는 저수지는 총 21개로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가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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