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180
한자 白石書院
영어음역 Baekseok Seowo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 12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원
양식 사당: 맞배지붕|강당: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652년연표보기
정면칸수 사당 3칸|강당 4칸
측면칸수 사당 2칸|강당 4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 120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백석서원(白石書院)에는 백석 유집(柳楫)[1585~1651], 창강 조속(趙速)[1595~1668], 반곡 유도(柳棹)[1604~1663] 등 향현 3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주벽에는 유집이 자리하고 있다. 유집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와 찰방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당시 이흥발(李興跋) 등과 의병을 모아 북상하던 중 삼전도에서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하여 고향에 돌아왔으며, 이후 강학을 열어 후진을 지도하였다. 당시 김제군수인 조속과 절친하였다.

조속은 시(詩)·서(書)·화(畵)의 삼절로 학문이 뛰어나 김제군수를 역임하면서 이계맹 신도비(李繼孟神道碑) 등을 남겼고, 유집과 교류하면서 지역 유림들과도 교분이 깊었다. 지방 수령으로 있으면서 청백리로서 학문과 서화에 정진하여 고을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유도의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자는 용제(用濟), 호는 반곡(盤谷)이다. 김제 출신으로 김장생의 문인이다. 유집의 동문으로 학문을 즐겨하고 효심이 깊었다. 병자호란 당시 형 유집의 격문을 보고 많은 의병들이 모이자 양곡을 모아 동참하였으나 삼전도의 항복 소식을 듣고 북쪽을 바라보며 통곡하고 돌아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변천]

백석서원은 1652년 김제군 백석면[현재의 김제시 백산면] 승반산에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거하였다. 1902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오다가 1962년 단을 철거하고 중건하였다.

[형태]

백석서원은 강당과 사당 두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내삼문 뒤에 있는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