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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186
한자 四賢祠
영어의미역 Sahyeonsa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79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당
양식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3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792 지도보기
소유자 봉성온씨 문중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봉성온씨 문중의 사당.

[개설]

수신재(守愼齋) 온신(溫信)은 1366년(공민왕 15) 신돈(莘旽)의 농정을 극간하다 벼슬이 강등되어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에 살게 되었다. 운림(雲林) 온림(溫琳)은 온신의 아들로 공양왕 때 좌랑을 지냈으며 고려 말기 두문동에 들어가 태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채 봉림동에 숨어 살며 스스로 운림한사(雲林寒士)라 칭하고, 금서(琴書)와 산수(山水)를 즐기다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니 사람들이 그를 의중고사(義中高士)라 하였다.

한수재 온윤(溫潤)은 온신의 손자로 고려가 망한 후 할아버지의 교훈을 따라 40여 년간 은거하다 여생을 바쳤는데, 고을 사람들이 임하처사(林下處士)라 하였다. 한정(閒汀) 온후(溫厚)는 세종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으나, 단종이 양위하자 전주 상관에 숨어 살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변천]

사현사(四賢祠)는 1934년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봉성온씨(鳳城溫氏) 문중 사당으로 대율리에 세워졌다. 그러나 1967년 대율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되기에 이르러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792번지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형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 1동이 있다.

[현황]

사현사에는 온신을 중심으로 온림·온윤·온후를 모시고 있다. 특히, 온달(溫達) 장군과 온군해(溫君解) 장군의 단이 설치되어 있다. 온달 장군과 온군해 장군의 후손인 온신이 고려시대 공민왕 때 좌우길시랑으로 요승 신돈의 농정을 아뢰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봉성[현재의 금구면]에 귀양살이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그 후손들이 금구면 산동리 등 각처에서 살게 되었다. 이에 1934년 3월 28일 이 지방 유림들이 장군들의 업적을 오래도록 추모키 위해 사현사를 세웠으며,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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