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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15
한자 吳世鐸-晉州姜氏旌閭
영어의미역 Jeongryeo of O Setak and His Wife of Jinju Gang Cl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양전동 439-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904년(고종 41)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양전동 439-1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양전동에 있는 효자 오세탁과 효부 진주강씨의 정려.

[개설]

오세탁(吳世鐸)의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군흥(君興)이며, 영조시대 임진년에 태어났다. 오세탁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모든 말씀을 정성으로 따르며 섬겼다. 그러나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낮에는 나무를 하고 물고기를 잡아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고, 밤에는 서당에 가서 늦도록 글을 읽었다. 이처럼 가난한 가운데서도 오세탁의 아내 진주강씨 또한 효성스러워 부모의 몸과 마음을 편안히 모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림병으로 목숨이 위독할 지경에 이르렀다. 두 부부는 여러 방면으로 약을 구해 올렸으나 소용이 없었고, 용하다는 의원들도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목욕재계하고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다. 그랬더니 꿈에 깊은 산골짜기에 이상한 풀 한 포기가 보이는지라, 이튿날 그 곳을 찾아가니 꿈에서 본 것처럼 약초 한 뿌리가 바위틈에 나 있었다. 부부가 기쁜 마음으로 이 약초를 캐어 달여 드렸더니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 후 아버지가 천수를 다한 후 세상을 떠나자, 예절을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돌보았다. 그런데 시묘살이 중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움막 곁에 둥지를 틀고 살더니 3년이 지나자 어디론가 날아갔다. 이런 사실이 『해동삼강실록(海東三綱實錄)』에 실렸으며, 부인 강씨와 더불어 1904년(고종 41) 2월에 쌍효문이 세워졌다.

[위치]

김제시 신풍동 주민센터에서 양전동으로 가는 길을 따라 3㎞쯤 가면 오른쪽에 김제시 양전동 용두마을로 가는 길이 있다. 여기서 400m 더 가면 용두마을인데, 마을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50m 더 가면 철길 옆에 마을 모정이 있고 그 옆에 오세탁·진주강씨 정려(旌閭)가 있다.

[형태]

오세탁·진주강씨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홍살이 있다. 정려 안에는 갓석이 있는 비가 세워져 있고 그 위에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오세탁·진주강씨 정려 안에는 가첨석이 있는 비석에 ‘효자증비서승오세탁효부증숙부인진주강씨지려(孝子贈秘書丞吳世鐸孝婦贈淑夫人晋州姜氏之閭)’라고 새겨져 있고, ‘효자증비서승오세탁효부증숙부인진주강씨지려(孝子贈秘書丞吳世鐸孝婦贈淑夫人晋州姜氏之閭)’라고 쓰여 있는 편액에는 1904년 2월에 명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효자전(孝子傳) 편액에는 풍산후인 김인흠(金寅欽)이 글을 짓고 여산후인 송영철(宋榮轍)이 썼다.

[의의와 평가]

효자 오세탁과 효부 진주강씨는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공양하였고, 이러한 지극정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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