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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23
한자 李良默妻朴氏旌閭
영어의미역 Jeongryeo of Yi Yangmuk's Wife of Bak Cl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 산34[입석7길 63-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 산34[입석7길 63-3]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 있는 조선시대 이양묵 처 효열녀 박씨의 정려.

[개설]

이양묵(李良默)은 전주 사람으로 의안대군 이화의 16세손이다. 효열녀 박씨(孝烈女朴氏)는 이양묵의 아내로서 시부모를 극진히 모셔 이웃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중 남편 이양묵이 죽자 박씨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칠순이 넘은 시어머니와 4살밖에 안 된 아들을 생각하여 죽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여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박씨를 탐내던 이웃 남자가 달려들어 힘으로 박씨를 껴안고 젖가슴을 만졌다. 이에 박씨는 하루 종일 슬피 울다가 아무도 몰래 죽은 남편의 제청(祭廳)에 들어가 자기의 젖가슴을 베어 영전에 바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박씨의 효와 정열을 나라에 알려 회자되었다.

[위치]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 월촌초등학교 정문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400m 정도 더 가면 길 오른쪽 산자락에 이양묵 처 효열녀 박씨 정려가 자리하고 있다.

[변천]

이양묵 처 효열녀 박씨 정려는 조선시대에 건립되었다. 1848년 4월 중수되었으며, 이후 효열녀 정려 사적을 보면 1995년 10월 4대 종손 이경휘에 의하여 중수·복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이양묵 처 효열녀 박씨정려는 팔작기와지붕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호박 주춧돌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홍살을 넣었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안에는 편액과 비가 있는데, 편액에 ‘효열녀학생이양묵지처박씨지려(孝烈女學生李良默之妻朴氏之閭)’라고 써져 있고, 간지에는 ‘숭정기원후사무신사월일중수(崇禎紀元後四戊申四月日重修)’라고 되어 있다. 효열녀 정려 사적을 기록한 비석에는 효열을 추모하는 4세손 이준휘의 시가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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