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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54
한자 洪壽壁旌閭
영어의미역 Jeongryeo of Hong Subyeok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 42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756년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 425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홍수벽의 정려.

[개설]

김제시 백산면 상리 두동은 1,100여 년 전 남양홍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여 형성된 마을로, 평소 덕을 베풀고 부모를 극진히 모셔 효성으로 나라에서 벼슬과 정문을 받은 홍수벽(洪壽壁)홍관효(洪寬孝), 홍재우(洪在禹) 등이 살았다. 그래서 그 후손들이 웃어른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머리 ‘두(頭)’자를 써 ‘두동(頭洞)’ 또는 ‘두멀’이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말 ‘두(斗)’자를 써서 ‘두동(斗洞)’으로 적었다고 한다. 서쪽에 있어 하서리라고도 한다.

홍수벽(洪壽壁)의 자는 화백, 호는 두촌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섬기되 하늘이 감동할 만큼 남달라서 주위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였다. 이에 유교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여러 번 천거하여 마침내 1756년(영조 32) 나라에서 정문을 내려주었다.

[위치]

김제에서 익산 방향으로 가다가 와룡역으로 가는 새로운 길에서 우회전하여 약 1.4㎞ 정도 가면 두동마을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두동마을 상리제 서편에 홍수벽 정려가 위치하고 있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기둥은 높은 돌기둥을 사용하였고, 사방에 홍살문을 설치하여 안에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정려각 중앙에 ‘효자홍수벽지려(孝子洪壽壁之閭)’라고 새겨져 있는 정려비가 있다. 비석 음기에는 “숭정 기원 후 3병자(1756)에 아들 홍관효(洪寬孝)가 세우고 손자 홍치우(洪治禹)가 글씨를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두동마을은 남양홍씨 세거지로, 효자 정려를 받은 홍수벽을 필두로 아들 홍관효와 손자 홍재우의 정려각이 같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예부터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버지가 효자면 아들도 아버지의 덕행을 체득하여 효자가 된다는 뜻으로, 3대를 걸쳐 정려를 받은 남양홍씨 효자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즉 효라는 것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몸소 실천하는 것을 보고 느낄 때 아들 역시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 아버지가 그 부모께 했던 것처럼 효성을 다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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