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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A020202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 화양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천수

[바다와 멀어진 삶]

1991년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시작할 당시만 해도 화양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농토가 생긴다 하여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이 적었다고 한다.

갯벌에 나가 갯지렁이, 조개, 망둑어로 생계를 이어 가던 사람들은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진척이 되면서 화양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갯벌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어업] 보상 다 나왔죠. 끝나 버렸지. 애당초는 천만 원을 주기로 했는데, 뭐시 어쩐다고 혀서 하나가 타는 집은 팔백만 원씩까지 주고, 둘이 타는 집은 나도 오백만 원, 이 양반도 오백만 원 그렇게 주고. [새만금방조제 공사 이후에는] 젊은 사람들이 짱둑 지켰어, 못 들어가게. 허가 없이 일절 바다를 못 들어가게 지켰어. [생활은] 근게 그대로 살지 뭐.”[송종섭, 1934년생]

“아 나도 일 년에 망둥어[망둑어] 몇 푸대썩 날랐어. 새만금 막음서 그것도 폐지가 되고 [지금은] 망둥어 나오도 안 혀, 새만금 [사업을] 해서 일절 나오덜 않으니까. 난 바다허고는 멀어져 버렸어, 이제.

새만금 [사업 초기에] 반대는 안 했지, 여기 사람들은. 새만금 막으면 농토만 생기는 줄 알았지. 농토 생기면 가까우니까, 여기 사람들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지. 근데 지금은 혜택이 없지. 갯지렁이 잡고 허는 사람은 돈 천만 원씩 보상을 받고 그랬어. 그런디 그렇게 않은 사람들은 아무 혜택도 없었고.”[이순구, 1931년생]

[투기꾼이 득실거렸어]

새만금 사업이 한창일 때, 광활면에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어 땅값이 3배 이상 오른 적이 있었다. 요즈음 땅값이 조금 내렸다지만, 농사와 갯일을 주로 하던 주민들에게 땅값 상승과 어업 보상책 등은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새만금 바람 불으면서 투기꾼들 들어와 가지고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고 봐야죠. 투기꾼들 오면서 논 값이 엄청 올랐어요. 타지에서 사람들 들어와서 처음에 논을 좀 샀다고. 여기 시가보다 한 오백만 원씩 더 주고, 새만금 막으면 여기가 좋아진다 해 가지고. 투기꾼들이 [땅값에] 바람을 넣어 가지고 1,200평[3,966.94㎡]이 7천에서 8천, 1억까지도 갔었어. 지금도 6~7천씩에 매매가 된다고. 농사짓는 사람들은 땅금이 올르면 좋은 건 아녀. 그 사람들이 휘저어 놓고 가면은 좋은 일이 하나도 없어. 근디 지금은 [부동산 투기가] 좀 조용해졌어요.”[박기영, 1948년생]

[정보제공]

  • •  이순구(남, 1931년생, 옥포리 화양1구 주민)
  • •  송종섭(여, 1934년생, 옥포리 화양1구 주민)
  • •  박기영(남, 1948년생, 옥포리 화양1구 새마을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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