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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A030301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 화양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천수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화 정책 추진의 영향을 받아 전국적인 이촌향도(移村向都) 현상이 나타났으며, 수많은 농촌의 구성원이 도시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인구의 이동으로 농촌마을에서는 인구 과소에 따른 유효 노동 인력 부족이, 도시에서는 인구 과밀에 따른 노동인력 과잉으로 실업의 증가라는 모순적인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도시 실업이 극대화되면서 기존 이촌향도 흐름과 반대되는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귀농·귀촌은 도시 실업자와 생태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관련 기관과 단체도 이 당시에 많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귀농이나 귀촌은 기존 생활 근거를 옮겨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어서, 관심에 비해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특히 귀농과 귀촌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는 경제 문제, 결혼, 자녀 교육 및 편의 시설의 부족 등이 주로 거론되었다.

[감자 농사가 잘되니까 사람들이 돌아와]

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에서 하우스 감자 농사가 성공을 거둔 후,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모든 귀농인이 정착에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귀농인들은 영농에 관한 비전문가로 작물 재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농산물 유통에 있어서도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충분하지 못한 귀농 자금으로 얼마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광활면에서 귀농에 성공하는 경우는 부모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농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영농 자금으로 국가 보조를 많이 확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감자 농사는] 우리 같은 사람은 [힘들어서] 못 혀. 젊은 사람들, 50~60대 이 사람들이 객지에 있다 들어와 갖고 [감자] 농사를 그렇게 [많이] 지어. [1997년] IMF 터지고 그때 온 사람들도 많지. 한 번 들어온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나가덜 안 혀, 감자 때문에.”[이순구, 1931년생]

화양마을의 경우는 IMF 이후 귀농한 귀농인 숫자가 다른 마을에 비해 많지 않다. 오히려 인근 마을에 정착한 귀농인이 훨씬 많은데, 그 이유는 화양이 면소재지로 상업과 농업이 공존하여 귀농인의 정착지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던 귀농인들은 주민들의 관심에서 떨어진 외지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화양마을에 귀농한 귀농인은 3가구로 다른 마을보다는 적은 편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귀농하는 분들은 여기는 잘 안 들어와요. 다른 마을은 젊은 층에서 [귀농인으로] 들어오는데, [그것도] 부모들 계셔서 들어오는 경우지. [화양마을에 귀농인이] 드문드문 있어요. 작년[2008년]에도 여기[화양마을에] 한 분 들어왔어요. 서울서 [살다가] 시골에서 한 번 살겠다고.”[박기영, 1948년생]

[정보제공]

  • •  이순구(남, 1931년생, 옥포리 화양1구 주민)
  • •  박기영(남, 1948년생, 옥포리 화양1구 새마을지도자)
  • •  강오길(남, 1956년생, 옥포리 화양1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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