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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C020204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선희

[청와대서 받은 포상금으로 전기를 들였지]

내촌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72년경이다.

인근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내촌 주민들은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고는 한국전력공사에 알아보니, 용성리 포교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공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민 부담금이 만만치 않다고 한 것이다.

전기 공사를 위해 전봇대 25개를 설치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당시로서는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사실, 전기 설치 공사는 이전에 청와대로부터 받은 포상금으로 모아 놓은 마을 운영 기금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1960년대 후반, 내촌마을은 농촌지도소에서 관할하는 농사개량구락부에 대한 전국적인 활동 평가 결과 최우수상을 수상해, 1백만 원의 포상금을 받았었다.

전기가 들어오면 농사도 더 잘 지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내촌마을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전기 공사를 추진하였다. 당시 이웃 외리와도 함께 공사를 하자 제안했으나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내촌마을에서만 공사가 이루어졌다.

공사 중에는 주민들 중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일손을 거들었다.

힘이 들어도 마을 일이었고, 마을일이 내일이란 생각으로 열과 성을 다하였다.

그렇게 전기가 들어오면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전기가 들어오기 전 생활에 익숙해서인지 전기를 아끼려는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목격되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은 세탁기가 있어도 여전히 직접 손빨래를 하고, 저녁 8시만 되면 불 켜진 집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칠흑같이 변하는 마을 일상이 이를 증명한다.

[지붕 가는 것도 유행이야]

내촌마을에 가면 농촌의 가옥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009년 8월 새로 지은 집부터 거의 허물어져 가고 있는 1960년대 가옥까지 다 있다. 명확하게 시대를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천천히 동네를 거닐다 보면 다양한 가옥 형태가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지붕이다.

멀리서 보면 내촌마을 지붕들은 각양각색이다. 기와지붕에서부터 슬레이트 지붕, 함석지붕, 지붕이 없는 양식 주택, 근래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옥상 있는 주택까지 모두 볼 수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일대는 초가집 일색이었다. 재너머에 있던 정채병 씨의 집만이 유일한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형편이 좀 나아지면서 정채병 씨 아버지가 정채병 씨 분가를 위해 지어 준 집이라고 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정채병 씨 집은 재너머 일대 지형을 설명하는 기준점이 되었다. 그 외에는 듬성듬성 놓여 있는 초가지붕에 사립문이 일반적이었단다.

[새마을운동이 불러온 변화들]

1972년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함께 마을의 주거 환경은 급속한 변화를 경험한다. 주택 및 지붕 개량 사업은 오래된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울타리 없애기, 길 넓히기, 초가집 없애기 등등 마을에서는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지붕은 대체로 시멘트 기와나 슬레이트로 교체되었는데, 따로 사람을 부르지 않고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나선 주민들의 도움으로 진행되었다. 서로 자기 일처럼 도움을 주고받는 데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 모든 게 개인의 일이 아닌 동네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건축 자재들이 다양해지면서 조금씩 집들을 손보는 일이 많아졌다.

현재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함석으로 된 색색의 지붕이다. 함석지붕은 약 6년쯤 전부터 현재까지 계속 증가 추세인데, 기와지붕보다 가볍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선호되고 있다.

이두영[1931년생] 할아버지 집은 안채와 부속채까지 포함해서 약 30평[99.17㎡] 규모인데, 6년 전 약 400만 원을 들여 함석지붕으로 교체하였다.

농촌에 함석지붕이 증가하는 것은 오늘날 농촌의 현실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1960~197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지어진 집들의 경우, 집을 지탱하는 기둥 등이 노후화해 흙 기와나 시멘트 기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 여느 농촌에서도 쉽게 목격되는 현상이지만 내촌마을 역시 자녀들을 출가시킨 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노부부 혹은 홀로 살고 있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다수 주민들은 얼마나 살지 모르는 노후한 집을 새로 짓는 일은 괜한 돈 낭비라 생각하고 집에 문제가 생기면 적은 돈을 들여 임시로 고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확산된 함석지붕은 그 색도 달라서 멀리서 바라보면 어디가 누구 집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전통적인 가옥의 멋은 사라졌지만 함석지붕은 오늘날 농촌과 농촌 사람들의 삶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변화하는 주민들의 삶을 통해 잊혀 가는 농촌의 생활사를 읽어낼 수 있는 역할도 하면서 말이다.

[정보제공]

  • •  한점순(여, 1929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주민)
  • •  강곡례(여, 1930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구석뜸 주민)
  • •  이두영(남, 1931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웃몰 주민)
  • •  이순여(여, 1931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주민)
  • •  박영환(남, 1934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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