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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C030109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선희

꼭두새벽마다 장순례[1938년생]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밭으로 나간다.

3년 전 덧없이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홀로 농사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아 벼농사는 그만둔 지 오래다. 사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도 농사일은 할머니 몫이 컸다. 할아버지는 농사일보다 더 좋아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칠순 농민 마라토너의 배우자로 살다]

칠순 농민 마라토너로 유명한 고(故) 정현모 할아버지가 바로 할머니의 돌아가신 반려자이다. 워낙에 뛰는 것을 좋아했던 할아버지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유독 더 열심히 달렸단다. 원로 마라토너는 마라톤 계에서는 영웅 같은 존재였고, 할머니도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쉬지 않고 달리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등지고 난 뒤, 이제 그 이야기는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서면, 할아버지가 각종 대회에 나가서 받았던 완주 메달과 증서, 여러 기관에서 받은 트로피와 공로패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다. 마치 작은 박물관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행사에서 달린 것은 1988년에 열린 서울올림픽 디데이(D-Day) 200일 기념 마라톤대회였다.

달리기가 좋아서 무작정 달렸던 할아버지는 5㎞ 부문에 출전해 완주 메달을 받으면서 마라톤 열정에 불을 지폈다. 이후 20여 회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면서 ‘마라톤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받은 완주 메달만도 무려 250여 개나 되어, 그것들이 할머니를 추억 속으로 끌어들이곤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할아버지의 죽음]

2006년 3월, 전국 방방 곳곳을 다니며 마라톤을 하시던 할아버지는 제주도 대회를 앞두고, 겨우내 폭설로 무너져 내린 축사를 수리한 뒤 잠시 잠을 청한 게 마지막 행로였다.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건데,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고단해서 잠을 청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손써 볼 틈도 없이 할아버지를 보낸 것이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가 그립고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비록 오순도순 농사일을 돕진 않았지만, 허망하게 자신의 곁을 떠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마라톤 대회에 처음 출전했을 당시만 해도 집안 형편은 참가비내는 것도 힘들었다.

등록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중에 다른 사람이 등록 후 출전하지 않으면 그 기회를 통해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김제농업협동조합과 원예조합에서 홍보대사로 임명받고 지원금을 주어서 경기에 나가곤 했다.

매주 쉬지 않고 마라톤대회에 나갔기 때문에 대회 참가비와 교통비를 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급작스럽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대회 출전을 위해 조합에서 빌렸던 돈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할머니의 몫으로 돌아왔다. 간신히 자식들의 도움으로 빚은 갚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할아버지가 운명(運命)을 달리하자 황영조 선수가 애도 조화를 보내 올 만큼 마라톤 계에서 많은 사람이 조문을 통해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렸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죽산면에서 주는 공로상도 받고 마라톤협회에서 주는 공로상도 받았다.

할아버지 생전에는 칠순 농민 마라토너라는 별칭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없는 이제,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긴 지 오래고, 홀로 남은 할머니 역시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할아버지 죽고 빚만 남았어]

빚을 질 정도로 달리는 것에 미쳐 있던 할아버지로 인해 혼자 농사일을 해야 했던 할머니는 마라톤에만 열중하는 할아버지가 얄미워 잔소리도 많이 했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려운 세상살이 할아버지가 곁에 있어 같이 버텨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맘껏 돌아 당겨도 머라고 안할 텐데.”라며 울먹이는 할머니가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뛰었던 경상남도 마산 3·15마라톤 대회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할아버지가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마침 기초생활수급대상자 탈락 통보 문서가 방안에 놓여 있었다. 한숨을 길게 짓고 있는 할머니에게 사진 속 할아버지가 미안하다는 말을 나지막이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보제공]

  • •  장순례(여, 1938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너머뜸 주민)
[참고문헌]
  • 전남일보(http://www.jnilbo.com/)
  • 마라톤(http://maratho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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