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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리 심원암골 도요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544
한자 金山里深源庵-陶窯址
영어의미역 Kiln Site in Simwonamgol Geumsan-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42-1 일대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유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가마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시대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42-1 일대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가마터.

[변천]

금산리 심원암골 도요지에서는 고려시대인 11~14세기에는 청자를 구웠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5~16세기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주로 구웠다고 한다.

[위치]

심원암(深源庵)청룡사(靑龍寺)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심원암 방향으로 약 50m 지점에 있는 밭이 가마가 있던 곳이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역의 조선시대 분청사기·백자 유적 현황과 관련한 사료와 기록 자료 및 현지조사가 크게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여 조사에 착수하였다. 당시 조사에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자기소와 도기소 가운데 전라북도 지역에 속하였던 12개 지역의 도기소와 자기소 각각 13개소 등 모두 26개소를 대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김제 지역의 도요지에 대한 조사는 같은 해 4월 8일부터 13일까지 6일간 진행되었는데, 금산리 심원암골 도요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청자의 경우 주로 대접과 접시들로서, 11~13세기의 것은 내저(內底) 원심이 작게 패인 것이며 14세기 말기의 것은 내저 원각(圓刻)이 없다. 조선 전기의 분청으로는 대접과 접시·항아리 저부편이 발굴되었는데, 인화여의두문(印花如意頭文)·우점문(雨點文)·국화문(菊花文) 등의 문양을 하고 있다. 백자는 대접과 접시, 그리고 종지와 잔 등으로 제작수법이 조잡하기는 하지만 조선 후기의 백자처럼 둔탁한 수법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조사 결과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북의 조선시대 도요지』라는 제목의 책자로 간행되었다.

[현황]

현재 금산리 심원암골 도요지는 밭으로 이용되면서 가마터는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백자편과 분청편이 사방에 널려 있다.

[의의와 평가]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김제 지역을 포함한 전라북도 지역 내 다수의 도요지를 조사함으로써 이 지역 도요문화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를 시발점으로 하여 전라북도 문화유적에 대한 적극적인 보존과 다각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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