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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584
한자 新德洞水越遺址
영어의미역 Suwol Relics in Sindeok-dong
이칭/별칭 무네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신덕동 423-1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개시설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삼국시대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신덕동 423-1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신덕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벽골제 거수문(渠水門) 중 북쪽 제1수문.

[개설]

벽골제(碧骨堤)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저수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벽골제가 축조된 때는 330년(백제 비류왕 27)으로 보고 있으며, 790년(원성왕 6)과 고려 현종 때 및 1143년(인종 21)에 고쳐 쌓은 후 1415년(태종 15)에 다시 쌓았다. 현재는 길이 약 3㎞ 정도의 둑만이 남아 있다.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서 이 둑을 농사짓는 데 필요한 물을 대는 통로로 고쳐 이용하면서 원형에서 많이 변형되었다.

둑의 북쪽에는 조선시대에 벽골제를 다시 쌓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는데 닳아서 명문을 알아보기는 어렵다. 1975년에는 저수지 물의 양을 조절하던 수문이 있던 자리 2곳을 발굴 조사하였으며, 그 결과 벽골제가 높은 수준의 측량 기술이 이용된 대토목 공사였음이 밝혀졌다.

신덕동 수월유지는 당초 벽골제를 시축할 때 5개의 거수문(渠水門) 중 북쪽 제1수문으로 수여수문(水餘水門)이라고 했는데, 무네미[물이 넘어가는 곳]가 한자로 변이되어 수월(水越)이라고 지명화되었던 것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당시 넘을 ‘월(越)’자를 달 ‘월(月)’자로 변경하여 김제시 신덕동에 있는 마을 이름은 수월(水月)이 되었다.

[위치]

신덕동 수월유지는 김제시 신덕동 신덕마을에서 장화동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부터 수월마을 근처의 논까지라고 전한다.

[현황]

김제시 신덕동 수월마을 동쪽 입구에 무네미의 유지가 마치 갈치처럼 길이 200m, 넓이 30m 정도의 수답으로 펼쳐져 있으며 지금도 수답 이름을 무네미배미라고 부른다. 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한 삽을 뜨면 큰 돌들이 밑에 깔려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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