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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636
한자 金堤碧骨堤
영어의미역 Byeokgolje Reservoir Monument and Embankment in Gimj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119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나종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김제 벽골제 사적 제11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제 벽골제 사적 재지정
성격 수리시설
양식 저수지
건립시기/연도 330년
높이 벽골제비 1.95m
길이 제방 원래 3,300m|현재 2,500m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119 지도보기
소유자 김제시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저수지.

[건립경위]

백제는 3세기 말에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아우르고 노령산맥 이북까지 진출하였고,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 노령 이남의 잔존 세력들을 굴복시키고 오늘날의 전라남도 해안 지방까지 판도를 넓혔다. 이 시기는 고이왕으로부터 근초고왕에 이르는 80여 년으로, 고대 국가 발전의 준비 기간으로서 마한 세력을 완전히 아울렀다. 또한 기후가 온난하고 넓은 평야를 가진 서남 지방이 지배 아래 들어오자 수전도작(水田稻作)을 장려하고 관개 시설을 확충해 경제적 기반을 다져 나갔다.

김제 벽골제의 대역사가 이루어진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벽골제의 축조 연대가 330년(백제 비류왕 27)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330년에 김제에 벽골제를 쌓고 이를 발판으로 하여 369년 남방경략(南方經略)을 도모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벽골제비는 1415년(태종 15)에 벽골제를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인데, 비문이 마멸되어 1684년(숙종 10)에 신털미산 정상에 중건되었다.

[위치]

이곳의 지형은 전주의 완산칠봉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자락이 낮은 언덕을 이루면서 김제시 금구면, 용지면, 교동월촌동을 지나 포교의 초혜산에 이르러 멈추고, 상두산에서 뻗어 나온 또 하나의 줄기는 김제시 금산면, 정읍시 옹동, 감곡면을 거쳐 김제시 부량면 명금산에 이르러 멈춘다. 이 두 줄기 사이의 가장 좁은 평원에 저수지의 제방을 쌓았다.

[형태]

벽골제방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는 약 3,245m, 『태종실록(太宗實錄)』의 기록으로는 약 3,362m이다. 1975년 벽골제 발굴 작업을 하면서 제방의 길이를 실측한 결과 약 3,300m가 나왔으니 문헌의 기록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벽골제비의 크기는 높이 1.95m, 폭 1.05m, 두께 0.13m이다.

벽골제방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포교(浦橋)를 기점으로 월승리(月昇里)까지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어 있는데, 수문지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석주(石柱)가 2군데에 1쌍씩 있다. 그리고 1925년 간선 수로로 이용하기 위한 공사에서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으며, 제방은 절단되어 양분(兩分)된 중앙을 수로로 만들어 농업용수를 흐르게 하였다.

1975년 발굴 조사에 따르면, 제방 높이는 북단(北端)이 4.3m, 남단(南端)이 3.3m이고, 수문 구조는 높이 5.5m의 2개 석주를 4.2m 간격으로 세웠으며, 서로 마주보는 안쪽 면에 너비 20㎝, 깊이 12㎝의 요구(凹溝)를 만들고 목제(木製) 둑판을 삽입하여 수량을 조절하였다. 석축(石築)은 약 6m이며, 가장 낮은 곳이 1.1m이다.

[현황]

현재의 김제 벽골제는 길이 2,500m의 제방과 2개의 수문인 장생거(長生渠)와 경장거(經藏渠)만이 남아 있다. 또한 현재의 제방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동진수리조합에서 둑의 가운데를 파서 농지 관개용 간선 수로로 개조해 놓은 상태이다.

벽골제비는 현재 전면과 후면의 비문이 심하게 마멸되어 거의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다. 신털미산에 있던 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1975년 장생거 옆의 제방 위로 옮기고 비각을 설치하였다가 1980년 벽골제지 정화 공사로 인하여 제방 아래 현재 위치로 옮겼다. 1963년 1월 21일 김제 벽골제비 및 제방은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3월 김제 벽골제로 사적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제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이자 최대의 농경 수리 문화 유적으로 각종 수리 시설 발달사의 산 교육장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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