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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740
한자 金就礪
영어음역 Gim Chwiryeo
이칭/별칭 위열(威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생년 1171년연표보기
몰년 1234년연표보기
본관 언양
대표관직 시중

[정의]

고려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언양(彦陽). 할아버지는 금오위섭낭장(金吾衛攝郞將)을 지낸 김언련(金彦連)이고, 아버지는 예부시랑과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낸 김부(金富)이다. 외할아버지는 검교장군행랑장(檢校將軍行郞將)을 지낸 송세명(宋世明)이고, 어머니는 대부인 송씨(大夫人宋氏)이다. 아내는 복야(僕射) 조언통(趙彦通)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김전(金佺)이다.

[활동사항]

음서로 정위(正衛)가 되었다가 태자부견룡(太子府牽龍)이 되었다. 이후 장군이 되어 동북계를 지켰고, 대장군이 되었다. 1216년(고종 3) 거란이 몽고의 공격을 받아 압록강을 건너 고려의 북방 지역으로 밀려오자, 대장군으로서 후군병마사가 되어 조양진(朝陽鎭) 등에서 거란군을 물리쳤다. 1217년(고종 4) 거란이 동주(東州)[지금의 철원]를 함락하자,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으로 전군병마사에 임명되어 거란 군사를 쫓아냈다.

이듬해 거란이 또다시 침입하자 병마사가 되어 서북면원수 조충(趙冲)과 함께 적을 공격하여 강동성(江東城)에 몰아넣었다. 이때 거란을 토벌하기 위해 강동성으로 진군하였던 몽고의 합진찰라(哈眞札剌)와 동진의 완안자연(完顔子淵)과 조우하였고, 이들과 연합하여 강동성의 거란군을 소탕한 뒤 몽고와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1219년에는 의주에서 한순(韓恂)다지(多智)가 일으킨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출동하였으며, 난이 평정된 뒤에는 피난민들을 안무하는 데 힘썼다. 이후 추밀사와 병부상서,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승진했다가 참지정사판호부사로 올라갔으며 1228년에 수태위(守太尉)와 중서시랑평장사판병부사(中書侍郞平章事判兵部事)를 거쳐 시중(侍中)에까지 올랐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의 김제군 명신조에 김취려의 이름이 올라 있다.

[묘소]

묘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15번지[능골1길 39-24]에 위치해 있다.

[상훈과 추모]

고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위열(威烈)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0.27 내용 수정 할아버지는 금오위섭낭장(金吾衛攝郞將)을 지낸 김언량(金彦良)이고 ->할아버지는 금오위섭낭장(金吾衛攝郞將)을 지낸 김언련(金彦連)이고
이용자 의견
관**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0.27
김** 할아버지는 김언량이 아니라 김 언련 (金 彦連) 입니다 201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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