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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51
한자 三綱門
영어의미역 Samgangmun Gate
이칭/별칭 김제조씨,삼강문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551-2[월연대3길 38]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905년(고종 42)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551-2[월연대3길 38]지도보기
소유자 김제조씨 종친회
문화재 지정번호 지정되지 않음
문화재 지정일 지정되지 않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개항기 김제조씨의 삼강문.

[개설]

삼강문(三綱門)김제조씨(金堤趙氏) 집안의 효를 기린 정려문으로, 김제조씨 종친회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조득양, 아들 조창현과 조기형·조기현, 그리고 그들 처 등의 정려가 있다. 조득양의 자는 화진(花震)이요, 호는 고암(高庵)으로 본관은 김제이며,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좋은 음식을 구해서 부모님께 대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절을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정성껏 돌보았다.

상복을 벗은 후에도 100일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하여 모시니, 밤이면 호랑이가 나와 지켜주기도 했다고 하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똑같이 하였다. 조창현은 효자인 조득양의 아들이며 벼슬은 사헌부감찰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효도가 극진하였으며 품성이 바르고 아름다워 사람들에게 예절이 밝았다. 어머니가 병환이 들자 슬퍼하여 낫기를 빌었으며, 아버지 병환 때에도 백방으로 약을 구하는가 하면 산에서 영약을 구하여 구환기도 했다.

그 후 부모가 돌아가셔서 6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살 때에도 생수가 솟아 나오기도 하고 하늘도 효성을 알아주었다고 한다. 통훈대부행사헌부감찰 조창현의 처 장흥고씨는 남편과 함께 부모 섬기기를 극진히 하여 벼슬과 이름이 적힌 기를 받았다. 조득양의 처 무안박씨, 효자 조기형과 조득정, 조기현의 처 이천서씨의 정려가 같이 모셔져 있다.

[위치]

김제시 부용역(芙蓉驛)에서 남쪽으로 길을 따라 약 700m쯤 가면 백구면 월봉리 서월연대마을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길 왼쪽에 삼강문이 서쪽을 향해 있다.

[변천]

1905년(고종 42)에 정려를 받은 이는 충효 조득양과 처 열부 무안박씨, 효자 조기형, 효자 조득정이고, 1936년에 정려를 받은 이는 효자 조기현과 처 열녀 이천서씨, 충효 조창현이며, 1940년에 정려를 받은 이는 효열부 조창현 처 장흥고씨이다. 1931년에는 「조씨사군각기(趙氏四君閣記)」를 연안 이병관이 썼으며, 1936년에는 삼강려 상량문을 자헌대부의정부찬정원임규장각직학사 여흥 민병한이 글을 지었다. 「삼강려기(三綱閭記)」는 가선대부 해평 윤영구(尹寗九)가 글을 지었다. 또 1942년 「효열부 표려기(孝烈婦表閭記)」는 연안 이병관이 썼다. 현재 삼강문은 새로 칠을 하였고 담장도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 기와지붕에 처마는 겹처마로 되어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홍살문으로 되어 있고, 담장은 시멘트이면서 정문은 철문으로 되어 있다. 정려 편액 6개와 정려 기문을 적은 편액이 있다.

[현황]

정려문 중앙에는 삼강문이란 편액이 있으며, 정려각 안에는 1905년과 1936년에 내려진 편액이 있고, 정려기가 적힌 편액 여러 개가 있다. 1905년 5월에 받은 정려 편액에는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효절선생김제조득양처열부정부인무안박씨지려(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孝節先生金堤趙得陽妻烈婦貞夫人務安朴氏之閭)’, ‘효자증호조참판김제조기형지려(孝子贈戶曹參判金堤趙基亨之閭)’, ‘효자통덕랑효량선생김제조득정지려(孝子通德郞孝良先生金堤趙得正之閭)’라고 쓰여 있다.

1936년에 받은 정려 편액에는 ‘효자김제조기현처열부이천서씨지려(孝子金堤趙記鉉妻烈婦利川徐氏之閭)’, ‘충효감찰효정선생김제조창현지려(忠孝監察孝靖先生金堤趙昶鉉之閭)’, ‘효열부통훈대부행사헌부감찰조창현처숙인장흥고씨지려(孝烈婦通訓大夫行司憲府監察趙昶鉉妻淑人長興高氏之閭)’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제조씨는 김제를 본향으로 하는 토착 성씨로 조필달(趙必達) 장군을 비롯하여 많은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었으며, 충신이며 효자인 조득양과 조창현은 김제 지역의 정려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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