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326
한자 中佳邱里
영어음역 Junggagu-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선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5.92㎢
총인구(남, 여) 371명(남자 201명, 여자 170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50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1914년 남흥·장사리·가장리·석남골·세곡·무학·율세리를 통합할 때 가구들의 한가운데에 해당하므로 중가구(中佳邱)라 하였다. 석남골[石南谷]은 돌이 많고 정남향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실(佳庄室)은 남흥(南興)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약 320년 전 영양남씨안동권씨가 개척하면서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흥은 중가구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남흥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영양남씨들이 번성하며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 동쪽에는 용의 모습을 닮은 용바우가 있다. 가야리 용두골[龍頭谷] 뒷산에서 날아온 용이 남흥 앞산인 용정산(龍井山·龍點山, 일명 용짐, 280m)에 앉았다가 남흥 부근에 떨어졌는데, 그때 떨어진 용이 변하여 용바우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묘골[卯谷]은 남흥 북동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산세가 아름답고 묘하며 산에 토끼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가느실[細谷]은 가장실 동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좁고 길어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용정산이 높이 솟아 있어 오전 늦게까지 그늘이 지므로 음곡(陰谷)으로도 불렀고, 조선 선조 때 선비 안경엄(安景淹)이 마을 뒤에 선영을 모신 다음 비곡(飛谷)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마을에 동고(東皐) 안제(安霽)를 모신 노봉리사(蘆峯理祠)가 있어 노곡(蘆谷)으로도 불렀다.

못골은 무학산(舞鶴山) 줄기 왼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 들판에 큰 못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못에 오리가 많이 살았으므로 목호리(鶩湖理)라 불렀는데 음이 변하여 못골·모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무학은 무학산 줄기 오른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학이 춤을 추는 형상인 무학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동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흥·장사리·가장리·석남골·세곡·무학과 부내면 율세리 일부가 통합되어 중가구동이 되고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나지막한 산과 구릉지에 마을이 흩어져 있고, 왼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평지에는 넓은 경작지가 펼쳐져 있으며, 남쪽으로 내려가면 안동호의 본댐이 있다. 가느실 뒤쪽에는 와룡산 준령이 뻗어 있고, 앞으로는 세곡천이 흐른다.

[현황]

와룡면 남쪽에 위치하며, 안동 시내에서 약 6㎞, 와룡면 소재지 남쪽 약 2㎞ 지점에 있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5.9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50세대에 371명(남자 201명, 여자 17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중가구1리·중가구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석낭골·동악골·가장실·남흥·동악골·모골·가느실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안동권씨·전주이씨·영양남씨·영천이씨 등이 살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하며, 특산물로 고추·지황·사과를 재배한다.

가느실은 순흥안씨 집성촌으로 18가구 중 16가구가 순흥안씨이다. 동악골은 안동댐 홍보관 조금 못 미쳐 왼쪽의 긴 골짜기를 따라 길가에 형성된 마을로 근래에 식당이 들어서서 성업 중이다. 동악골에 있는 용정산 남쪽의 용정(龍井)은 가물 때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산에는 기우단이 있다. 남흥에는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8호인 남흥재사가 있다. 1500년대에 남흥사 법당을 개조한 건물로 고려 말의 문신 남휘주(南暉珠, 1326~1372)와 남민생(南敏生, 1348~1407) 부자의 재사(齋舍)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