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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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熙洛 |
영어음역 | Gim Huirak |
이칭/별칭 | 숙명(淑明),고식헌(故寔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숙명(淑明), 호는 고식헌(故寔軒). 증조할아버지는 김여건(金汝鍵)이고, 할아버지는 김경온(金景溫)이다. 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김두동(金斗東)이며,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류세원(柳世源)의 딸이자 김희소의 동생이다.
[활동사항]
김희락(金熙洛)은 1761년 안동(현 봉화군)에서 태어났으며,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92년(정조 16)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몇 달 뒤 도산(陶山) 응제(應製)에서 장원하였다. 1794년(정조 18) 규장각 강제문신(講製文臣)으로 뽑혀 족형인 김희주(金熙周)와 함께 궁중을 출입하며 여러 과제(課製)와 사서 조대(條對)에서 자주 장원하였다.
김희락은 문장과 학식이 뛰어나 정조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받았고, 많은 강제문과 응제문을 지어 올렸다. 1794~1800년 삼조(三曹)의 낭관과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을 지내는 동안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였고, 말년에는 노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흥양현감을 자원하였다. 1803년(순조 3) 향년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고식(故寔)』 5권 3책이 있다. 편수관으로 활동하면서 『해동인물고(海東人物攷)』와 『영남명신록』, 『홍재전서(弘齋全書)』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고식』에 실려 있는 「주자대전강의십조차자」에는 답장흠부인설(答張欽夫仁說)을 비롯하여 중화설(中和說)과 답여자약서(答呂子約書) 등 10조가 있고, 또 『홍재전서』에 대한 정조의 「어비별유」가 있다. 「중용강의」는 각 장마다 정조가 조목별로 묻고 김희락이 답한 글이다.
설(說)에는 「성즉리설(性卽理說)」·「유정유일윤집궐중설(惟精惟一允執厥中說)」, 책(策)에는 「환향책(還鄕策)」·「팔자백선책략(八子百選策略)」·「위의책략(威儀策略)」, 의(議)에는 「영성수성제의(靈星壽星祭議)」·「금양의(禁讓議)」, 변(辨)에는 「금고문변(今古文辨)」이 있는데, 모두 임금의 명을 받아 지은 올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