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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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豹庵宅-主人韻-次韻- |
영어의미역 | Writing a Poem about Pyoam at His Hous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계형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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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광려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이광려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은거하고 있던 강세황의 청아한 삶을 노래한 오언율시의 한시.
[개설]
이광려(李匡呂)[1720~1783]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재 (聖載), 호는 월암(月巖) 또는 칠탄(七灘)이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학행이 높아 천거를 받아서 참봉이 되었다. 학식과 덕행이 높고 문장이 뛰어나 당시 사림의 제1인자였다고 한다.
강세황(姜世晃)은 부모를 모두 잃고 살림이 궁핍해지자 32세 때에 처가가 있는 안산(安山)으로 거처를 옮긴 뒤 61세의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오를 때까지 안산에서 30여 년 동안 생활하였다. 그동안 강세황은 ‘안산 15학사’를 위시한 풍아(風雅)한 선비들과 바르고 품위 있는 인사들과 함께 시·서·화로 밤과 낮을 보내는 성사(盛事)의 시절을 보냈다.
성호 이익(李瀷)의 재실에서 이용휴(李用休)·이맹휴(李孟休) 종형제와 안산 15학사들이 비에 갇혀 며칠을 보내며 시와 술로 보낸 일화들과 시들이 『표암유고(豹庵遺稿)』와 시고(詩稿)에 병서(倂書)와 함께 남아 있다. 이는 곧 안산 지역이 조선 후기 문화운동사의 본향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강세황의 모습을 담은 시가 「표암댁에서 주인 운을 차운하여 읊다」라는 오언율시로서, 이광려의 문집인 『이참봉집(李參奉集)』권2에 실려 있다.
[내용]
군가미심벽(君家未甚僻)[그대의 집 그리 외진 곳도 아니건만]
내좌사심산(來坐似深山)[들어와 앉으면 마치 깊은 산속인 양]
청취도서냉(晴翠圖書冷)[맑은 하늘의 푸른빛에 서책들도 서늘하고]
임향궤각한(林香几閣閒)[숲속 향기에 서재는 한가로워]
명원시득주(名園始得主)[이름난 정원이 비로소 주인 만나니]
차사량개안(此事良開顔)[이처럼 반가운 일 어디 있겠나!]
노아객시도(老我客時倒)[늙은 이 몸도 이따금 와서]
송근간폭환(松根看瀑還)[솔뿌리 향내 맡고 폭포수 보고 가게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