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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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장 유준근이 1906년 쓰시마섬 유배 생활 중에 기록한 일기. 『마도일기(馬島日記)』는 1906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 일대에서 흥기한 홍주의병(洪城義兵)의 실패로 쓰시마섬[對馬島]에서 유배 생활을 한 한말의 의병장 유준근이 기록한 필사본 일기이다. 『병오일기(丙午日記)』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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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16세기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및 동방정교회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성립한 종교이다. 전통적인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의 교리와 제도에 항의한다[Protest]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말한 데서 연유한다. 개신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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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 시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의 지방 제도 정비는 성종(成宗)[재위: 981~997] 초부터 시작되어 현종(顯宗)[재위: 1010~1031] 대에 이르러 일단락되었다. 1018년(현종 9) 전국을 5도 4도호부 8목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을 두었다. 보령 지역에는 보령현과 남포현의 2개 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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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보령 지역 근대 장시의 변천과 중심지 이동.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1차산업[농업, 어업, 임업] 위주의 자급자족적 경제가 주를 이루었다. 국토의 70%가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로망이 열악한 관계로 상공업의 발달이 어려웠고, 일부 고을의 관아 또는 지방 거점 고을에만 시장이 열려 물물교환 행위만이 간간히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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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를 시조로 하고, 김명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金首露)[42-199]를 시조로 한다. 이후 금관가야가 신라에게 멸망한 뒤에는 금관가야의 왕족들이 신라의 진골(眞骨)로 유입되었다. 삼국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대각간(大角干) 김유신(金庾信)[595-673]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김해로 하는 성씨이다. 김해 김씨는 경파(京派),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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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보령 지역의 보령현과 남포현에서 동학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혁명. 충청남도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내포’라고 불리는 서남부 지역, 천안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역, 보령을 비롯하여 서천, 부여, 청양 일대를 아우르는 서남부 지역, 논산과 금산을 포괄하는 동남부 지역, 우금치 전투가 일어난 공주 지역으로 나뉘어 활동상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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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일원에 있었던 지명인 남포현의 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 문신. 박동선(朴東善)[1562~1640]의 자는 자수(子粹), 호는 서포(西浦)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포현감으로 백성을 보호하였고,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병자호란에는 왕손을 호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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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박일복(朴一福)[1882~1909]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1907년 신도여(申道汝) 의병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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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지역에 설치된 고려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고려 초에 신읍현(新邑縣)을 보령현(保寧縣)으로 변경하였다. 결성군(結城郡)의 영현(領縣)이었는데, 1018년(현종 9)에 홍주의 속현(屬縣)으로 하였다. 1106년(예종 원년)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보령현의 위치는 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지역이며, 치소(監務)는 보령리 구성재에 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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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현 3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따르면 보원(寶院)은 현 동쪽 17리의 보원부곡(寶院部曲)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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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서기(徐起)[1523~1591]는 남포 제석동[현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학자로 충청우도 최초의 서원인 공암서원(孔巖書院)[현 충현서원(忠賢書院)]을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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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보령은 원삼국 시대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자리했을 것으로 비정(比定)되지만 그 실체는 분명하지 못하다. 백제 시대에는 사비기(泗沘期)를 전후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됨에 따라 설림군[서천]의 영현(領縣)인 사포현과 결기군[결성]의 영현인 신촌현으로 편제되었다. 고려 시대에 양광도로 편제된 보령은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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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오경춘(吳敬春)[1874~?]은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출신으로 1908년 4월 오양선(吳良善)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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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잔미산에 있는 조선 후기의 봉수대. 조선 전기의 기록에는 옥미봉 봉수대가 없고, 18세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옥미봉 봉수대가 나타난다. 옥미봉 봉수대는 18세기에 신설된 봉수대이다. 옥미봉 봉수대는 순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충청남도의 내륙을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었던 제5거 중 옥구(沃溝)에서 갈라져 서천~비인~남포~보령~흥양~결성~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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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청양군, 예산군 지역의 오일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보부상 조직. 원홍주 등 6군상무사(元洪州等六郡商務社)는 1851년 홍주와 홍주목 관할에 있던 청양·보령·결성·대흥 등의 보부상들이 설립한 단체로, 보상[봇짐장수]과 부상[등짐장수] 중에 보상이 중심이 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포구와 오일장에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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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유준근(柳濬根)[1860~1920]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으며, 서울에서 3·1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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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북인의 영수로서 조정의 요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에 이른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어린시절 친가의 세거지였던 충청남도 보령에 거주하였고, 이산해의 후손들이 한산과 아산 일대에 정착하여 세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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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전후에 활약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한 연안 이씨의 입향조. 이시방(李時昉)[1594~1660]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이며 충청남도 보령과 홍주 지역에 세거한 연안 이씨 입향조이다. 강화도를 방비하고 청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힘썼으며 남도에 대동법을 주장하는 등 병자호란 전후에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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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충청도 보령 지역 연해에 나타난 우리 배와 모습이 다른 외국 선박의 출몰. 이양선(異樣船)은 조선 시대 연해에 나타난 서양의 배들을 말한다. 서양의 배의 모양이 우리 배의 모습과 다르다는 뜻으로 ‘이양선’이라고 하였으며, 이단선(異團船)·황당선(荒唐船)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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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정착한 조선 후기의 문신. 이정민(李貞敏)[1556~1638]은 이몽학의 난에 공을 세운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글솜씨가 뛰어났다. 만년에 보령 청라의 옥계리에 옥계정(玉溪亭)을 짓고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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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와 특성. 보령시는 충청남도 서남부에 있는 시로, 면적은 586.56㎢, 행정 구역은 1읍 10면 5동이고, 시청 소재지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산로 77[보령시 명천동]이다. 인구는 2021년 12월 말 기준 98,408명이다. 보령시는 동경 125° 57′~동경 126° 44′, 북위 36° 10′~북위 36° 31′에 있으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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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보령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인 보령현(保寧縣)과 남포현(藍浦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보령현과 남포현은 서로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보령현은 “본래 백제의 신촌현(新村縣) 이었는데, 신라 때에 신읍(新邑)이라 고쳐 결성군(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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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에 자리한 상설 재래시장. 중앙시장(中央市場)은 1929년 12월 영업을 개시하여 9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충청남도 보령시의 대표적 재래시장이다. 1851년 ‘원홍주등육군상무사(元洪州等六郡商務社)’라는 이름의 보부상 조직의 활동으로 보령에 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유래한 중앙시장은 일제 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 등 시대적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변함없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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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에 있는 주자, 송시열을 제향하는 개항기 사당. 집성당(集成堂)은 1898년 삼희당(三希堂) 윤석봉(尹錫鳳)[1842~1910]의 주도로 율농(栗農) 신섭(申㰔)[1838~1899]과 돈간재(敦艮齋) 조진학(趙鎭鶴)[1836~1902] 및 보령과 인근 지역의 유림의 도움을 받아 세운 사우이다. 집성당은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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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채팽윤(蔡彭胤)[1669~1731]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으로 시문과 글씨에 뛰어나 숙종(肅宗)[재위: 1674~1720]과 영조(英祖)[재위: 1724~1776]의 총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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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일대에서 양식하는 굴 특산물. 충청남도 보령시 북쪽 끝가락에 자리한 천북면 일대는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자연산 굴 생산이 많았다. 천북면의 해안가 갯벌에서는 예로부터 맛이 좋은 굴이 생산되었으며, 1980년대부터 일찍이 양식 굴을 생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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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관산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보령의 역참. 청연역(靑淵驛)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광시역(光時驛)·세천역(世川驛)·용곡역(龍谷驛)·급천역(汲泉驛)·순성역(順成驛)·흥세역(興世驛)·풍전역(豐田驛)·하천역(下川驛)·몽웅역(夢熊驛)·해문역(海門驛)과 함께 금정도(金井道)[조선 시대 충청도 청양의 금정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에 편제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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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제 침략에 대항하고 국권 회복을 위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개항기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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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의병. 황영수(黃英秀)[1855~1919]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출신으로 1906년 홍주의병에 참여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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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봉화산에 있는 조선 전기 봉수대. 충청남도 보령에 속한 흥양곶 봉수대는 조선 전기 홍주(洪州)에 속한 봉수대였다. 순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오다가 충청남도의 내륙을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었던 제5거 중 옥구(沃溝)에서 갈라져 서천-비인-남포-보령-흥양-결성-홍주-서산-당진-면천을 거쳐 다시 제5거 중 양성(陽城)으로 전달하던 간봉(間烽)의 노선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