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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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에서 발굴되어 보령문화연구회에서 번역한 한일병합조약 당시 대한제국의 국민을 위협한 일본 총독의 공고문. 「유고문(諭告文)」은 한일병합조약 이후 일본 총독이 대한제국의 국민에게 일본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으면 강력한 처벌이 뒤따를 것이라고 위협한 공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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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에서 전해지는 토정 이지함과 관련한 이야기. 「토정 이지함 전설」은 충청남도 보령에서 출생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과 관련한 이야기들로, 토정 이지함의 기이한 행적과 묘, 그리고 『토정비결(土亭祕訣)』을 지은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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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바위와 관련된 이야기. 「형제바위」는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바위에 관한 이야기로, 만선으로 귀가하던 우애 있는 형제가 빼섬 근처에서 죽게 된 이야기이다. 이 바위는 빼섬의 우측 바다 가운데 나란히 서 있어 사람들은 형제바위라고 부른다. 빼섬은 추도(抽島) 또는 배섬이라고도 불린다. 빼섬은 추도를 한글식으로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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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소탕해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사형을 당해 보령시에 묻힌 명장. 강순(康純)[1390~1468]은 조선 전기의 명장으로 일찍이 북방 방어 능력을 인정받아 세조(世祖)[재위: 1455~1468]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여세를 몰아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하였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에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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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16세기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및 동방정교회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성립한 종교이다. 전통적인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의 교리와 제도에 항의한다[Protest]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말한 데서 연유한다. 개신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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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서양에게 문화를 개방하였던 1876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남도 보령의 역사. 19세기 후반 개항기는 안으로는 세도정치에 의한 국정의 혼란과 삼정의 문란에 의한 민생의 파탄으로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시기였으며, 밖으로는 서양 세력이 통상 요구를 강력하게 주장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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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신라의 신읍현이 예속되었으며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결성면에 비정되는 상급 행정 구역 명칭. 결성군(結城郡)은 웅주에 속한 군으로 백제 시대 결기군(結己郡)이었다. 통일 신라기에 신읍현과 신량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는데, 이 가운데 신읍현이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일대로 비정된다. 군·현에는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렸는데, 군에는 태수(太守), 현에는 현령(縣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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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에 있는 개신교 교회. 고대도교회는 1832년 개신교 선교사 중 최초로 고대도를 통해 한국을 방문한 카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1803~1851]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의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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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에서 경주 김씨가 대대로 거주하는 고장.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의 경주 김씨는 김수준(金守俊)이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시기에 보령 지역으로 내려와 거주하면서 입향하였다. 이후 지금까지 후손들이 묘지·신도비(神道碑)·재실(齋室) 등을 관리하면서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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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고 김성우(金成雨)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광산 김씨(光山 金氏)는 광주 김씨(光州 金氏)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이후 광산 김씨로 통일되었다. 광산은 오늘날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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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자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광주 안씨는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본관의 시조는 고려 태조(太祖) 대 지방 관리였던 안방걸(安邦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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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지역에서 전해오는 민요 및 설화. 한 지역에서 구비(口碑) 전승되는 것은 주로 민요[노동요, 의식요, 유희요]와 설화[광포 설화와 지역 설화]이다. 민요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불리고, 설화는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민요는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가 대다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설화는 광포(廣浦) 설화와 지역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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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도 보령 남포현감으로 부임하여 신안사 창건을 발의한 문인 관료. 권상신[1759~1824]은 충청도 공주 출신으로 문과 장원 급제 후 관직 생활을 하였는데, 1796년(정조 20) 보령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부임하여 주자(朱子)[1130~1200]를 제향(祭享)하는 영당(影堂)의 건립을 발의하여 신안사(新安祠)가 건립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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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보령 지역 근대 장시의 변천과 중심지 이동.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1차산업[농업, 어업, 임업] 위주의 자급자족적 경제가 주를 이루었다. 국토의 70%가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로망이 열악한 관계로 상공업의 발달이 어려웠고, 일부 고을의 관아 또는 지방 거점 고을에만 시장이 열려 물물교환 행위만이 간간히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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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의의. 기독교는 영어로 크리스트교(Christian religion)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믿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세계 인구 약 70억 명 중 모든 교파를 합쳐 24억 명의 신자를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로마 후기에 그리스정교회와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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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광제(金光濟)[1866~1920]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출신으로 애국계몽운동 활동을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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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에 정착하여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어 광산 김씨가 보령의 주요 가문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은 선비. 송도에서 태어난 김남호(金南浩)[1360~1424]는 아버지가 조선 건국기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이유로 자결하자 귀향을 포기하고 보령에 정착하여 광산 김씨가 보령의 주요 가문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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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왜구를 격퇴하고, 보령에 정착한 광산 김씨의 입향조. 김성우(金成雨)[1327~1392]는 고려 말 전라우도 도만호(都萬戶)로, 보령을 황폐화시킨 왜구를 소탕하고 보령에 정착하였으나 조선 건국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신념으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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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에 건립된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에 있는 고려 말 장군 김성우의 묘비. 김성우 장군 묘비(金成雨 將軍 墓碑)는 고려 말 전라우도(全羅右道) 도만호(都萬戶)로 왜구를 토벌하고 보령에 정착한 광산 김씨 입향조인 김성우(金成雨)[1327~1392]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607년(선조 40)에 건립되었다. 묘비는 김성우의 후손 김경지(金景祉)가 글을 짓고, 김섭(金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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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충규(金忠圭)[?~?]는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출신으로 1910년 국권피탈이 되자 항일 독립 투쟁을 위하여 상하이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동하였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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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해군 때 충청도 보령 지역으로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한 문신. 김태국(金泰國)[1566~1624]은 광해군 12년에 관직을 버리고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고향으로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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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고려 후기 김성우 장군과 부인 진원 박씨의 묘. 고려 후기 무신이자 전라우도(全羅右道) 도만호(都萬戶)를 지낸 김성우(金成雨)[1327~1392] 장군과 부인 진원 박씨의 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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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택을 시조로 하고 최만흥과 최논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나주 최씨(羅州 崔氏)는 전라남도 나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조선 명종 대 진사(進士)였던 최택(崔澤)을 시조로 하고 최만흥(崔萬興)과 최논금(崔論金)을 입향조로 하는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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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속하는 법정면. 충청남도 보령시에는 1개 읍 및 5개 동 외에 10개 면이 있는데, 남포면(藍浦面)은 그중 하나의 법정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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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의 명칭. 남포현(藍浦縣)은 신라 때 개칭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서림군의 영현(領縣)이었다. 1018년(현종 9)에 가림현에 이속시켰다가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 진성(鎭城)을 설치하였다. 대몽 항 쟁기에는 삼별초의 공격으로 감무가 잡혀갔으며,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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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내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근대의 생활 유적 및 고분 유적. 2015년 1월 29일~2015년 4월 20일 백제문화재연구원이 지표 조사를 하여 조선 시대 기와 가마터 1개소와 2개의 유물 산포지를 확인하였다. 이후 고운문화재연구원이 2020~2021년에 걸쳐 각각 두 차례의 시굴 조사와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 생활·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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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갈매못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천주교 선교사. 다블뤼(Daveluy Marie Antoine Nicolas)[1818~1866]는 프랑스 아미앵(Amiens) 태생의 천주교 사제로, 세례명은 안토니오이다. 다블뤼는 선교사를 희망하여 1843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하여 1866년 충청남도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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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에 있는 해수욕장. 해안사빈 중 모래가 고우면서 길고 넓게 펼쳐져 있고, 경사가 완만하고, 배후의 해안사구에 해송이 심어져 있는 등 풍치가 아름답고, 바닷물 수온이 적당한 경우 대개 해수욕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에도 육지와 섬의 해안 곳곳에 해안사빈들이 잘 발달하여 있고, 그 중의 거의 대부분에 해수욕장이 들어서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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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비를 시조로 하고 윤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무송 윤씨(茂松 尹氏)는 무송(茂松)[현재 전라북도 고창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본관의 시조는 고려 예종 대 보승낭장(保勝郎將)을 지낸 윤양비(尹良庇)이다. 이후 무송 윤씨는 고려 시대에도 뛰어난 학자와 훌륭한 신하들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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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을 시조로 하고 김해은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무주 김씨(茂州 金氏)의 시조 김성(金晟)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43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대 문과 등과 후 국자감(國子監) 찰주를 역임하였다. 조선 태종 대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뒤 무주백(茂朱伯)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무주를 시조가 난 곳으로 삼았다고 『무오보(戊午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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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일원에 있었던 지명인 남포현의 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 문신. 박동선(朴東善)[1562~1640]의 자는 자수(子粹), 호는 서포(西浦)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포현감으로 백성을 보호하였고,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병자호란에는 왕손을 호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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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백관형(白觀亨)[1861~1928]은 충청남도 보령군 청소면 출신으로 유준근(柳濬根)[1860~1920]과 함께 홍주의병과 서울에서 3월 1일 만세운동을 참여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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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도 보령 지역 출신의 성리학자. 백이정(白頤正)[1247~1323]은 고려 후기의 학자로 안향(安珦)[1243~1306]으로부터 성리학을 배웠다. 그 후 10여 년간 중국 연경에 머물며 성리학을 연구하고, 고려에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백이정의 학통은 이제현(李齊賢)[1287~1367], 이색(李穡)[1328~1396], 권근(權近)[1352~1409], 변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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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천주교 선교사와 교인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순교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사건 . 병인박해(丙寅迫害)는 네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다. 첫 번째는 1866년 봄, 두 번째는 1866년 여름에서 가을, 세 번째는 1868년, 네 번째는 1871년으로 이어져 도합 8천여 명 이상의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1866년의 세 번째를 무진사옥(戊辰邪獄), 1871년 네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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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일제 강점기와 8·15광복 이후 산업화 시대까지 존재했던 광업의 흥망성쇄. 조선 시대 광업은 대체로 억제되었지만, 1890년대 들어 외국자본에 의해 금광을 위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의 경우 1900년 일본인 아사노 소이치로[淺野總一郞]가 대한제국 궁내부와 교섭하여 직산금광 개발을 허가받으면서 광산 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충청남도의 금 생산은 직산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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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선림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선림사(禪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사찰의 전언에 의하면 신라 시대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지만 입증할 만한 근거는 없다. 조선 철종 때 박행원(朴行遠)이 사찰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선림사에 조선 후기 목조 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점을 보면 조선 철종 시기에 선림사가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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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인 1593년 6월 21일부터 29일까지 보령현감, 남포현감 등 충청도 병력이 참전한 2차 진주성전투. 경상도 진주성에서 의병장 김천일(金千鎰)[1537~1593], 경상우병마절도사(慶尙右兵馬節度使) 최경회(崔慶會)[1532~1593]를 비롯한 경상도 병력과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 황진(黃進)[1550~1593], 보령현감 이의정(李義精)[1555~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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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에 있는 조선 전기의 보령현 관아의 정문. 보령관아문(保寧官衙門)은 보령읍성의 남문이다. 관아문은 돌로 성을 쌓은 읍성의 남쪽 성벽 성문 앞에 옹성이 설치되고, 문루 위에 초루(譙樓)[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가 들어서는 형태인 개거식(開据式)으로 만든 2층 누각 형태의 목조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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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성에 있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유격장군인 계금을 위해 설치한 공덕비. 보령유격장군청덕비(保寧遊擊將軍淸德碑)는 1598년 조선 시대 충청수영성 내에 설치된 비이다. 정유재란 때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 일대로 들어온 중국 명나라 장수 계금(季金)의 덕행을 기려 세운 청덕비(淸德碑)이다.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에서는 옛 장수들을 신으로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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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관학 교육 기관. 보령향교(保寧鄕校)는 조선 시대 보령현(保寧縣)에서 유현(儒賢)을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교육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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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필을 시조로 하고, 오희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보성 오씨(寶城吳氏)는 오현필(吳賢弼)을 시조로 한다. 1216년(고려 고종 3)에 거란군을 토평(討平)한 공으로 오현필의 큰형 오현보(吳賢輔)는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지고, 둘째 형 오현좌(吳賢佐)는 동복군(同福君)에, 오현필은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져 3형제가 파를 형성하여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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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가르침을 따르고, 불경을 경전으로 삼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어 공인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이다. 곧이어 백제와 신라에도 불교가 전래되었다. 백제의 불교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남중국 동진(東晋)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전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다음해인 385년에 한강 유역의 도읍인 한산(漢山)에 불사(佛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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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근대화와 산업화 추진 결과로 인한 식량 부족을 우리나라의 식량 수탈로 충당하고자 보령 지역에 실시한 쌀 증식 계획.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부터 일제가 조선을 자국의 식량 공급 기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쌀 증식 정책을 말하며, 보령 지역에서는 간석지 개간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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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와 남포면 옥서리 사이에 있는 고개. 고개는 일반적으로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를 통해 사람과 물자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고개의 대부분은 고개를 대체하는 도로, 교량, 터널 등이 건설되면서 고유의 교통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새아니재를 포함한 보령시 대부분의 고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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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8·15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활발했던 산업 분야 중 하나. 한국의 석탄산업은 일제 강점기 발달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정점을 찍고 오늘날에는 쇠퇴하고 있는 산업 분야이다. 보령의 석탄산업 또한 한국의 석탄산업과 궤를 같이 한다. 보령의 석탄산업은 해방 이후 발달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정점에 달하였고, 1990년대 쇠퇴하였다. 한때 성주면과 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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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조선 시대에 창건된 사찰. 선림사(禪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선림사는 보령 충청수영성(保寧 忠淸水營城)이 있는 오천항에서 동쪽으로 약 2.4㎞ 정도 떨어져 있으며, 사찰 주변은 높이 100~200m 내외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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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신천 강씨(信川 康氏)는 강지연(康之淵)[?~?]을 시조로 하고 강계권(康繼權)[?~1413]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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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원(金樂元)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안동 김씨(安東 金氏)는 고려 전기의 문신인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김낙원(金樂元)[1761~?]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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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와 남포면 읍내리 사이에 있는 고개. 고개는 일반적으로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를 통해 사람과 물자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고개의 대부분은 고개를 대체하는 도로, 교량, 터널 등이 건설되면서 고유의 교통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여늬재를 포함한 보령시 대부분의 고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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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관산리와 주교면 관창리 사이에 있는 고개. 고개는 일반적으로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를 통해 사람과 물자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고개의 대부분은 고개를 대체하는 도로, 교량, 터널 등이 건설되면서 고유의 교통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역재를 포함한 보령시 대부분의 고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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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갈매못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천주교 선교사. 오메트르(Pierre Aumaitre)[1837~1866]는 프랑스 에젝 태생의 천주교 사제로, 세례명은 베드로, 한국명은 오(吳) 베드로이다. 오메트르는 1862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1863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교 활동을 벌이다가 1866년에 체포되어 다블뤼(Marie 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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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교성리에 있는 개항기 관학 교육 기관. 오천향교(鰲川鄕校)는 구한말(舊韓末) 오천군(鰲川郡)에서 유현(儒賢)을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한 교육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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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갈매못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선교사. 위앵(Martin Luc Huin)[1836~1866]은 프랑스 기용벨 태생의 천주교 사제로, 세례명은 마르티노 루가, 한국명은 민(閔) 마르티노 루가이다. 위앵은 1861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865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교 활동을 벌이다가 1866년에 체포되어 다블뤼(Marie Nic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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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이후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일어난 반침략·반외세 운동. 위정척사운동은 위정척사 사상을 기반으로 성리학적 세계관과 지배체제를 강화하여 일본과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응한 반침략·반외세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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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공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그 계승자들에 의해 실천된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유교는 중국 춘추 시대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가 체계화한 사상으로 정치 사상,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맹자(孟子)[기원전 372~기원전 289], 증자(曾子)[기원전 506~기원전 436] 등 제자 및 계승자들을 통해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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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으로 후손들이 보령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인조반정의 공신. 유순익(柳舜翼)[1559~1632]은 기호학파의 거유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제자로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반정군이 들어오는 시간에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로 궁궐의 문을 여는 임무를 수행하여 공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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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승병을 이끈 승병장. 유정(惟政)[1544~1610]은 풍천 임씨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고, ‘유정(惟政)’은 법명이다. 임진왜란 중 승병을 이끌고 전공을 세우고, 전란 후 일본에 사신으로 가 조선인을 송환하였다. 유정의 선조인 임향(任珦)이 여말선초에 충청도 남포[현 보령시]에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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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영(李起永)[1874~1918]은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출신으로 구한말 대한독립의군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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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묘정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신. 이래(李來)[1362~1416]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정몽주 시해 사건에 연루되고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는 등 태종 이방원의 충직한 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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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종(李鳴鍾)[1893~1954]은 보령 출신으로 1919년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면 3·1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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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의병장. 이산겸(李山謙)[?~1594]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지휘하여 충청 지역을 지켜내는 데 큰 공을 세운 의병장이었으나, 송유진의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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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과 서천의 서원에 향사된 조선 전기의 문신. 이산보(李山甫)[1539~159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호종(扈從)하고 전후에는 기근을 해결하고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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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명나라에서 귀화하여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정착한 무인. 이성룡(李成龍)[1600~1653]은 조선 후기 명에서 귀화한 무인으로 명과 후금의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명군이 패하자 조선으로 피신하여 보령에서 혼인하고 정착하였다. 이성룡의 후손들이 보령에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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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충청도 보령 지역 연해에 나타난 우리 배와 모습이 다른 외국 선박의 출몰. 이양선(異樣船)은 조선 시대 연해에 나타난 서양의 배들을 말한다. 서양의 배의 모양이 우리 배의 모습과 다르다는 뜻으로 ‘이양선’이라고 하였으며, 이단선(異團船)·황당선(荒唐船)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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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지번(李之蕃)[1508~1575]은 한산 이씨로 보령에서 후학을 양성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형이며, 영의정에 오른 이산해(李山海)[1539~1609]가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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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채우(李採雨)[1865~1936]는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출신으로 1919년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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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충남선 개통과 경남철도주식회사의 무창포해수욕장 개발. 대한제국기부터 계획되었던 한국의 철도는 부설 주체와 운영 방식이 노선마다 달랐다. 하지만 러일전쟁 이후 군사적, 경제적 목적에서 한반도의 철도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던 일본은 경부철도를 매수하여, 경의철도·마산철도와 함께 통감부에서 운영하게 하였다. 따라서 철도 부설은 대한제국이 일본자본주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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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2차에 걸쳐서 침략하여 보령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는 명(明)을 공격하기 위해 길을 비켜 달라는 구실로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하였다. 조선은 수도인 한양이 함락당했으나 국왕 선조(宣祖)[재위: 1567~1608]가 의주로 피난하였고, 명의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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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몽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몽열(李夢說)[1542~1607]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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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한국계 러시아 여인 정길당이 보령 지역을 비롯한 충청도 일대에서 러시아정교회인 희랍교 선교사를 사칭하였던 사건. 정길당의 아버지 고씨는 러시아로 넘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국적을 얻었는데, 이후 가족들 중 정길당만이 조선으로 되돌아왔다. 정길당 사건은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친러 세력에 의하여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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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충청남도 보령시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정미의병(丁未義兵)은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되고 한국군이 강제 해산될 시기인 정미년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항일의병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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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응두(鄭應斗)[1917~?]는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면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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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조존성(趙存性)[1554~162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 가서 조선에서의 명군 철수를 중지시켰으며, 명군의 군량미 수송에도 큰 공을 세웠다. 광해군의 생모 추존에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는데, 이때 외가가 있는 충청남도 보령에 은거하며 보령과 인연이 깊어졌다. 정묘호란 때에는 전주로 세자를 호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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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종교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대표적이다. 보령시는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수도에서 외진 곳에 있어 종교의 유입이 비교적 늦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 위에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신흥 종교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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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보령군에 설립된 공립 농업 보습학교.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에 일찍부터 실업 학교를 설치하고 실업 교육을 실시하였다. 실업 학교에는 농업, 상업, 공업, 직업, 실업보습학교가 있었다. 이 중 실업보습학교의 경우 다른 실업 학교에 비해 수업 연한이 짧고, 학력 인정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제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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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고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한 명나라의 무신. 천만리(千萬里)[1543~?]는 명나라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1549~1598] 휘하의 조선 원병으로 참여하여 평양·곽산·동래·울산 등에서 전공을 세웠다. 전후 명군이 귀국할 때 따르지 않고 조선에 정착하였다.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송학리에 집성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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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창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천안 전씨(天安 全氏)는 전섭(全攝)[?~?]을 시조로 하고 전시창(全始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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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교회.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천주교가 조선에 널리 수용되기 시작한 18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18~19세기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천주교 교세는 크지 않았다. 보령 지역은 충청남도 일대에서 가장 늦은 1962년에 이르러서야 대천성당이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대천성당이 본당으로 설립되면서 보령 지역에서도 천주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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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핵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청해 이씨(靑海 李氏)는 이지란(李之蘭)[1331~1402]을 시조로 하고 이핵(李翮)[1635~1702]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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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무강자사로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참전 후 귀화하였으며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무신. 추수경(秋水鏡)[1530~1600]은 명나라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1549~1598]을 따라 참전하여 곽산·평양성·한양·진주·동래성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주 군영에서 사망하였다. 추수경의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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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7월 15일 보령 충청수영 소속의 충청수군이 원균의 지휘 아래 칠천량에서 싸운 전투. 임진왜란 중 명(明)과 일본의 화의(和議)가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선조 30) 1월 다시 조선을 침범하였다[정유재란]. 당시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모함으로 하옥되었고, 원균(元均)[1540~1597]이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로 있었다. 원균이 충청도·경상도·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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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는 전망대. 전망대는 일반적으로 사면이나 평지에 돌출하여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높이 만든 망루 형태의 대(臺)로서 사방을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충청수영해안경관전망대는 전망대의 기능을 갖춘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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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고대도에서 선교 활동한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1803~1851]는 프로이센 출신의 목사로 태국, 중국, 대만 등지에서 선교사이자 통역관, 의사로 활동하였다. 카를 귀츨라프는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선 로드 앰허스트호(Lord Amherst)의 의사이자 통역관으로 탑승하여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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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풍천 임씨(豊川 任氏)는 시조인 임온(任溫)[?~?]을 시조로 하고, 임향(任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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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한양 조씨(漢陽 趙氏)는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조필(趙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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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과 1906년 말 충청남도 홍성 및 보령 지역 일대에서 유생과 농민들이 일으킨 의병. 독립운동의 시작은 한말(韓末) 의병운동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말 의병은 한민족이 문화적으로 뛰어난 민족이라는 문화 민족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일본을 대상으로 항전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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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황재현(黃載顯)[1848~1903]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창암리 출신으로 구한말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정의를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가톨릭과 서양의 문물을 반대한 19세기 중엽 구한말의 사상 조류]을 펼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