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월명암의 승려 부설 거사의 일생을 다룬 불교적 전기 소설. 「부설전(浮雪傳)」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내변산로 236-180[중계리 사자동 산96-1]에 있는 월명암(月明庵)을 창건하였다는 부설 거사(浮雪居士)의 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한문 필사본 전기 소설이다. 「부설전」은 한문 필사본 1권으로 되어 있다. 신라 진덕 여왕 때에 향아라는 곳에 진광세...
-
1447년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송하기 위해 지은 노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1914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던 실상사 불상의 복장물(腹藏物)[불상 안에 넣는 물품]로 발견된 세종이 지은 악장(樂章)이다. 1446년(세종 28) 소헌 왕후 심씨가 죽자 세종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 대군[세조]에게 명하여 불교 서적을 참고하여 『석보상절』을...
-
1389년 부안 출신의 최광지가 왕명으로 발급 받은 과거 합격 증서. 최광지(崔匡之)는 전라도 부안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최광지의 증조할아버지는 최용봉(崔龍鳳)이고, 할아버지는 최을인(崔乙仁), 아버지는 최담(崔霮)이다. 최담은 예부시에 급제한 뒤에 조선에서 집현전 제학(集賢殿提學)을 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담의 아들 최광지, 최직지, 최득지, 최덕지 등 네 명은 모두...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가오리 원촌 고분군(嘉五里院村古墳群)은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 원촌마을의 구릉 경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부안군 상서면 원촌길 28-42 재실 뒤편에 해당한다. 가오리 원촌 고분군은 2004년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부안군』 작성 시 조사 과정에서 구릉 경사면의 3기로 최초 보고되었다. 보고된 3기의...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간재 전우가 학문을 연구하던 장소. 간재 선생 유지(艮齋先生遺址)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전우(田愚)[1841~1922]가 학문을 연구하던 장소이다. 전우는 임헌회 문하(門下)에서 20년간 학문을 배웠으며, 1882년(고종 19)에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10년(순종 4) 국권을 일본한테 강탈당...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갈촌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고분군. 갈촌리 송정 고분군(葛村里松亭古墳群)은 부안군 주산면 갈촌리 송정마을의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송정마을’ 이정표에서 제내마을 방면으로 100m 지점, 구릉 하단부에 3기의 분구묘가 자리하고 있다. 갈촌리 송정 고분군은 2004년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부안군』 작성 시 조사...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
-
삼국 시대 백제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일대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개화현(皆火縣)은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에 백제의 군현 중 하나로 나온다. 백제가 신라에 병합된 뒤 경덕왕(景德王) 때 신라의 관부와 관직 이름 및 지방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개화현을 부령현(扶寧縣)으로 고치고 고부군이 거느리는 현의 하나로 편제하였다. 『삼국사기』...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설치한 수군진. 줄포만의 북편 중간 곰소항 옆에 자리한 검모포(黔毛浦)는 고려 이래 황해의 군사 방어 요충지로서 조선 시대에는 수군진(水軍鎭)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인근 제안포에 나라의 세곡을 거두어 개경으로 수송하는 안흥창(安興倉)이 있었다. 1358년(공민왕 7) 7월 왜적이 안흥창 인근 검모포에 침입하여 전라도 세미를 실...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던 조선 시대 행궁. 행궁(行宮)은 임금이 궁 밖으로 행차하였을 때 임시로 머무르던 별궁(別宮) 혹은 이궁(離宮)이다.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역대 임금들은 본궁 이외에 전국에 행궁을 세우고, 지방 순행 때 처소로 사용하거나 전란 발생 때 피난처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라북도 지역에는 고려 시대 군산도의 숭산 행궁과 조선 시대 격포진(格浦鎭)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설치한 수군진. 격포진은 변산반도에서 황해로 가장 많이 튀어나온 항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요인으로 인하여 1640년(인조 18) 순검사 박황(朴潢)의 건의로 진(鎭)을 설치하고 호남 수로의 요충을 제어하도록 한 것이다. 격포는 삼남(三南) 해로의 인후(咽喉)이자 강화도를 막아 지킬 수 있는 지역으로 거리가 멀지 않아서, 혹시...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 조개더미군. 조개더미[貝冢]는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원삼국 시대]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당시 생계 체계의 흔적이다. 패총 또는 조개무지라고도 부르며, 다양한 조개껍데기가 층층이 쌓여 있는 퇴적층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개껍데기 퇴적층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생활용품 등이 시기별로 섞여서 문화층을 이...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 계화산에 있는 조선 시대의 연변 봉수. 계화리 봉수(界火里烽燧)는 조선 시대 5봉수로 중 순천 돌산도에서 서울 남산을 이어 주던 제5거 루트의 직봉에 해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북쪽으로 만경 길곶[봉수]으로 연결되고, 남쪽으로 점방산[봉수]으로 연결된다[北應萬頃吉串 南應占方山]”라고 하였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고려 시대 조개더미. 조개더미[貝冢]는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원삼국 시대]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당시 생계 체계의 흔적이다. 패총 또는 조개무지라고도 부르며, 다양한 조개껍데기가 층층이 쌓여 있는 퇴적층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개껍데기 퇴적층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생활용품 등이 시기별로 섞여서 문화층을 이루게...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고덕붕(高德鵬)[1552~1626]은 임진왜란 때 흥덕의 남당(南塘)[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 남당마을]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부안 호벌치(胡伐峙)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남익(南翊), 호는 여곡(麗谷). 아버지는 참봉 고응진(高應軫)이다. 고덕붕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서기 918년부터 서기 1392년까지 존속하였던 고려 시대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시대 부안 지역은 부령현(扶寧縣)과 보안현(保安縣)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들 두 현을 합치면서 각기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부안현(扶安縣)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조에 들어와서이다. 따라서 고려 시대의 부안은 하나의 고을이 아니라 두 개의 고을로 계속 나누어...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북도 부안군 남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고촌향(鼓村鄕)은 특수 행정 구역으로 부안군 관내에는 고촌향 외에도 신덕소(申德所)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1 전라도 전주부 부안현 조에 “속향이 1이니 고촌이요, 소가 1이니 신덕이다[屬鄕一 鼓村 所一 申德]. 고촌의 망성이 1이니 호이다[鼓村亡姓一 扈].”라고 기록되...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고홍건(高弘建)[1580~1655]의 본관은 제주이며, 자는 입부(立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세호(考世豪)로 공조 참판에 증직되었고, 할아버지는 고사렴(高士廉)으로 병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아버지는 고희(高曦)로 호성공신(扈聖功臣)이며 호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부령 김씨(夫寧金氏) 김의복(金義福)의 딸이다. 고희의 동생인 고현(高晛)의 아들...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고홍건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1668년에 세운 비. 고홍건(高弘建)[1580~1655]의 본관은 제주이고 자는 입부(立夫)이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몸집도 커서 23세 때인 1603년(선조 36)에 실시된 계묘 정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왕을 모시고 공주로 피난을 갔는데...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고홍달(高弘達)[1575~1644]의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달부(達夫), 호는 죽호(竹湖)이다.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제원군(濟原君) 고사렴(高士濂)이고 아버지는 고현(高晛)이다. 부안 지역의 제주 고씨는 16세기 초에 고세호(高世豪)가 처음 부안에 내려오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뒤 무과 급제자가 14...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무신. 고희(高曦)[1560~1615]의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증병조 판서(贈兵曹判書) 고사렴(高士濂)이며, 어머니는 안씨(安氏)이다. 동생 고현(高晛)의 둘째 아들인 고홍건(高弘建)을 양자로 들였다. 고희는 1560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였다....
-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약 30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기. 구석기 시대는 돌을 깨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로, 땅속 깊은 곳에서 찾아지는 거의 모든 유적의 출토 유물은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돌감은 강가나 해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영제 자갈돌뿐 아니라 흑요석, 유문암, 안산암, 셰일 등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채집해야 하는...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구지산에 있는 삼국 시대 토성. 2020년 현재까지 구지리 토성(九芝里土城)에 대한 시굴·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두 차례의 지표 조사만 실시하였다. 따라서 축조 시기와 그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마한(馬韓) 때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관방(關防) 유적으로 추정된다. 구지리 토성은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구지마을 동쪽, 동진면과 계화면 경...
-
조선 시대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역원. 역원은 전근대 시대에 지방에 출장 가는 관원들을 위해 설치한 숙박 시설로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사원에 부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승려들이 업무를 맡기도 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사원을 원으로 전환하거나 신축하여 공무를 비롯하여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계(金啓)[1528~1574]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회숙(晦叔), 호는 운강(雲江)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당(金璫)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사온서 직장을 지낸 김회윤(金懷允)이며, 할아버지는 정언을 지내고 청렴 강직으로 이름 높던 김직손(金直孫)이다. 아버지 김석옥(金錫沃)은 1513년(중종 8) 생원이 된 뒤 부안에 머무르며 벼슬을 하지 않...
-
고려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구(金坵)[1211~1278]는 고려 시대 전라도 부령현[전라북도 부안군의 옛 이름] 출신으로 최씨 무인 집권기부터 원 간섭기 초에 활동한 학자 관료이다. 뛰어난 시문 능력으로 외교 문서 작성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였으며, 만년에 부안에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등 고려 후기 유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김구의 본관은 부안(扶安)[부령(扶寧)이라고도...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무신. 김극신(金克新)[1583~?]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신지(新之)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주부(主簿) 김중일(金重鎰)이다. 김극신은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경상우도(慶尙右道)의 병마우후(兵馬虞侯)를 역임하였다. 우후는 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종3품의 무반직이다. 만기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1636년...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김단(金湍)[1606~1671]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지숙(止淑), 호는 수분와(守分窩)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행창락도 찰방(行昌樂道察訪)을 지낸 김광(金光)이며, 아버지는 김태복(金泰福)이다. 김단은 1606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석계(石溪) 최명룡(崔命龍)의...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김명(金銘)[1545~1619]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여신(汝新), 호는 화곡(火谷)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주부(主簿) 김경정(金景貞)이다. 죽계(竹溪) 김횡(金鈜)[1541~1590]이 그의 형이다. 김명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형인 죽계 김횡과 함께 학문에 힘썼다. 이에 김명의 학명(學名)이 널리...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명열(金命說)[1613~?]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군보(君輔)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김경순(金景順)이고, 아버지는 담양부사 김홍원(金弘遠)이다. 김명열은 1613년(광해군 5)에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서 태어났다.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으로부터 글을 배웠으며, 노봉(老峰) 민정중(閔鼎重)과는 도의로 사귀었다. 39세 때인 1...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김상성(金相誠)[1768~1827]의 본관은 부안(扶安)이고, 자는 내실(乃實), 호는 확은(確隱)이다. 군사(郡事) 김광서(金光敍)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경로(金敬魯)이다. 생부는 권농가(勸農歌)를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김익(金瀷)인데, 김상성은 큰아버지 김옥(金沃/土)의 양자로 들어갔다. 김옥은 1768년(영조 44) 식년 진사시에 합격했으...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석필(金錫弼)[?~?]의 본관은 부안(扶安)이고, 자는 공언(公彦)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당(金璫)이고, 할아버지는 김회윤(金懷允)이며, 아버지는 김중손(金仲孫), 어머니는 신숙량(辛淑亮)의 딸이다. 부인은 채석견(蔡石堅)의 딸과 최씨 부인 두 사람이다. 김석필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났다. 1502년(연산군 8) 알성시 문과에 3등...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석홍(金錫弘)[1473~1546]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호는 옹천(甕泉)이다.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김당(金璫)이고, 할아버지는 사온서 직장(司醞署直長) 김회윤(金懷允)이며, 아버지는 한산군수(韓山郡守) 김직손(金直孫)이다. 어머니는 윤등준(尹登俊)의 딸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김석홍은 1473년 전라북도 부안군 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김억일(金億鑑)[1544~1604]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오봉(鰲峰) 김제민(金齊閔)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중임(重任), 호는 만휴당(晩休堂)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 김영무(金英武)이다. 김억일은 지금의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났다. 1587년(선조 20) 효자로 천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경로(敬老), 호는 겁암(㤼庵). 증조할아버지는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이다. 김문기의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이며, 호조 판서를 역임한 퇴휴당(退休堂) 김순(金順)의 손자이며 증영의정 김관(金觀)의 아들이다. 김문기는 1426년(세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14...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김익(金瀷)[1746~1809]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이정(而靜), 호는 정일(精一)·우수(迂嫂)이다. 군사(郡事) 김광서(金光敍)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목환(金目煥)이며, 아버지는 김경로(金敬魯)이다. 어머니는 풍산 홍씨(豐山洪氏)로 홍대서(洪大敍)의 딸이다. 김익은 세 번 혼인하였는데, 첫째는 임건하(林建夏)의 딸 나주 임씨(羅州林氏...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익복(金益福)[1551~1599]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계응(季膺)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김후손(金後孫)이고, 할아버지는 김석량(金錫良)이며, 아버지는 행창락도 찰방(行昌樂道察訪)[창락도는 경상도 풍기의 창락역을 중심으로 한 역도임]을 지낸 김광(金光)이다. 부인은 순흥 안씨(順興安氏)이다. 위로 김...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일좌(金日佐)[1664~1722]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여해(汝諧), 호는 만은(晩隱)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진사(進士) 김응별(金應鱉)의 현손(玄孫)이며, 아버지는 김근(金瑾)이다. 김일좌는 1664년(현종 5)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36세 때인 1690년(숙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93년(...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김정길(金鼎吉)[1576~1645]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응구(應九)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주부(主簿) 김경정(金景貞)이고, 아버지는 죽계(竹溪) 김횡(金鋐)이다. 김정길은 1576년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판곡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 간에도 우애가 돈독하였...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김제민(金齊閔)[1527~1599]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사효(士孝), 호는 오봉(鰲峰)이다. 할아버지는 김부현(金傅賢)이고, 아버지는 김호(金灝)이며, 어머니는 김석옥(金錫沃)의 딸이다. 부인은 참봉 김윤구의 딸 김해 김씨이다. 아들로는 김엽(金曄), 김흔(金昕), 김안(金晏) 등이 있는데, 모두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하였...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김종(金宗)[1471~1538]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호는 매죽당(梅竹堂)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감(縣監) 김숙손(金淑孫)이다.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김직손(金直孫)의 조카이다. 김종은 1489년(성종 10)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사화(士禍)를 목격하고는 문과를 단념하고 고...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직손(金直孫)[1437~1493]의 본관은 부안이며, 자는 자윤(子胤)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광서(金光敍)이고, 할아버지는 김당(金壋)이며, 아버지는 사온서 직장(司醞署直長) 김회윤(金懷允), 어머니는 송광선(宋光善)의 딸 연안 송씨(延安宋氏)이다. 부인은 윤등준(尹登俊)의 딸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아들로 김석옥(金錫沃)과 김석홍(金錫弘)을 두...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치원(金致遠)[1572~?]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사의(士毅), 호는 계곡(桂谷)·직절(直節)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垢)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김종(金宗)이고, 할아버지는 김승정(金承貞)이며, 아버지는 김장(金鏘)이다. 부인은 김정간(金廷幹)의 딸이다. 김치원은 1572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32세 때인 1603년(...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김태복(金泰福)[1552~1629]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여응(汝膺), 호는 옹정(瓮井)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김후손(金後孫)이고, 할아버지는 김석량(金錫良)이며, 아버지는 행창락도 찰방(行昌樂道察訪)[창락도는 경상도 풍기의 창락역을 중심으로 한 역도임]을 지낸 김광(金光)이다. 김태복은 두 번 장가를...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김해(金垓)[1563~1637]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여후(汝厚), 호는 퇴우당(退憂堂)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 증이조 참판(贈吏曹參判) 옹천(甕泉) 김석홍(金錫弘)이고, 아버지는 판결사(判決使) 김의복(金義福)이다. 아들로 김이겸(金李謙)을 두었다. 김해는 1563년(명종 18) 전...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김홍원(金弘遠)[1571~1645]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이중(而重), 호는 해옹(海翁)이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贈戶曹參判) 김경순(金景順)이고, 아들은 순천부사(順天府使) 김명열(金命說)이다. 김홍원은 1571년(선조 4)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서 태어났으며, 1588년(선조 21)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 부안 김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살았던 부안 김씨(扶安金氏) 가문에서 남긴 고문서들의 대부분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생산된 문서들이다. 작성 당시에는 상동면 상리로 불리었던 지역이며, 우반동의 부안 김씨와는 뿌리를 같이하기는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조금 떨어져 있다. 내기리 부안 김씨 소장 고문서(內基里...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에 있는 노대익의 순절과 금성 오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노대익 순절기적비(盧大益殉節紀蹟碑)는 노대익과 열부 금성 오씨(錦城吳氏)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상서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내변산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736호선을 따라 우슬재를 넘으면 유동마을이 나오는데 유동마을 초입부 도로변에 자리한다. 화강석으로 짜맞춘 석...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노휴재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노휴재(老休齋)는 처음에는 부안의 유력 씨족인 영월 신씨(寧越辛氏)와 진주 김씨(晉州金氏)를 중심으로 1798년(정조 22)에 조직된 향중 노인들의 모임이었다. 향리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 시문도 짓고 향촌의 풍속을 교정하기도 하였다. 향약(鄕約)과는 다른 일종의 계(契) 모임인 셈이다. 처음에는 두 씨족의 자손들로만 조...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원삼국 시대 패총. 패총(貝冢)은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원삼국 시대]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당시 생계 체계의 흔적이다. 조개더미 또는 조개무지라고도 부르며, 다양한 조개껍데기가 층층이 쌓여 있는 퇴적층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개껍데기 퇴적층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생활용품 등이 시기별로 섞여서 문화층을 이루게...
-
조선 시대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에 설치된 역원. 역원은 전근대 시대에 지방에 출장 가는 관원들을 위해 설치한 숙박 시설로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사원에 부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승려들이 업무를 맡기도 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사원을 원으로 전환하거나 신축하여 공무를 비롯하여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하였다. 조선 후기로...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삼국 시대 조개더미. 대부분의 조개더미는 청동기 시대에 일차적으로 조성되었고, 이후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에 다시 형성되었다.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조개더미의 위치가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당시 생계 환경의 유사성을 추론할 수 있다. 마포리 유동 조개더미는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유동마을에 있으며, 유적 남쪽으로 수라봉이 자리한다. 조...
-
1728년 전라북도 부안군 일대와 충청도, 경상도 등지에서 영조와 노론 정권에 반대하여 소론 준론이 주도하며 일으킨 반란 사건. 무신란(戊申亂)은 1728년(영조 4) 3월 15일~3월 24일에 소론(少論) 준론(峻論)과 남인(南人) 사족(士族) 등이 연합하여 일으킨 반란 사건이다. 영조의 폐위와 소현 세자(昭顯世子) 증손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의 왕위 추대를 위해 일으킨 반...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의 유적지.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은 17세기에 조선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론을 주창한 실학(實學)의 비조(鼻祖)이다. 32세 되던 1653년(효종 4) 한양에서 부안 우반동(愚磻洞)으로 이거하였다. 1670년(현종 11) 49세 때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완성하였으며, 3년 뒤인 1673년(현...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군에 거주하였던 실학자 유형원의 삶과 학문, 사상. 유형원(柳馨遠)[1622~1673]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이다. 세종(世宗) 때 우의정을 지낸 유관(柳寬)의 9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정랑 유성민(柳成民)이며, 아버지는 예문관 검열 유흠(柳𢡮)이다. 외할아버지는 여주 이씨(驪州李氏) 이지완(李志完)이다. 유형원은 열다섯...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안성리 반곡산에 있는 삼국 시대 토성. 1990년대 초 지표 조사를 통해 동진강(東津江) 하구 일대에서 6개소의 토성이 학계에 보고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반곡리 토성(盤谷里土城)이다. 그러나 2020년까지 반곡리 토성에 대한 시굴·발굴 조사가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아 그 역사성이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반곡리 토성은 부안군 동진면 안성리 반곡마을 뒷산인...
-
660년 8월부터 663년 10월까지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주류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백제 부흥 운동.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 유민들은 과거 백제의 영역에서 백제 부흥 운동을 벌였는데, 그 중심지가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주류성이었다. 서기 660년 7월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이 나당 연합군에게 함락된 후 백제 유민들은 곧바로 침략군을 물리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으며, 이를 ‘...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인. 백학진(白鶴鎭)[1821~1889]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자는 은문(殷聞), 호는 청전(靑田)이다. 증광 진사시 합격 당시의 방목에는 백학래(白鶴來)로 되어 있다. ‘백학진’이라는 이름은 뒤에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백동호(白東顥)이다. 백학진은 1821년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서 태어났다.1859년(철종 10) 증광 진사시에...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유민 집단. 변산 도적은 조선 후기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유민(流民) 집단으로 ‘변산적(邊山賊)’으로도 불렸다. 1728년(영조 4)에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에 사족(士族)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참가했는데, 부안 지역의 변산적(邊山賊)도 가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고려와 조선 전기까지 전라북도 부안군 남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보안현(保安縣)은 고려 시대 부안군 남부 지역에 있었던 현(縣)으로 통일 신라의 희안현(喜安縣)을 고친 이름이다. 통일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16)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방 행정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백제의 흔량매현을 희안현(喜安縣)으로 바꾸었는데, 고려가 이를 보안현(保安縣)으로 바...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봉래 구곡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바위 글씨. 1925년에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1874~1948]이 쓴 글씨를 너럭바위에 새겼다. 봉래 구곡 암각서(蓬萊九曲巖刻書)는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43번지, 봉래 구곡(蓬萊九曲)의 제5곡 봉래곡(蓬萊曲)에 있다. 넓은 바위에 ‘봉래 구곡’이라는 초서체 글씨가 위에서 아래쪽으로 새겨져 있다. 크기는 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조선 후기 명필 박시수가 새긴 바위 글씨. 박시수(朴蓍壽)[1767~?]의 본관은 반남, 자는 성용(聖用)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사수(朴師洙), 할아버지는 박만원(朴萬源), 아버지는 박상한(朴相漢)이다. 외할아버지는 대구 서씨(大丘徐氏) 서명응(徐命膺)이고, 장인은 조시위(趙時偉)이다. 1783년(정조 7)에 실시된 계묘 증광시(癸卯增廣試) 진...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봉황리 고분군(鳳凰里古墳群)은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 봉황마을에 위치한다. 장군산에서 동-서로 뻗은 나지막한 구릉의 동쪽 말단부에 5기의 분구묘가 분포하고 있다. 봉황리 고분군은 2004년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부안군』 작성 시 조사 과정에서 최초로 보고되었으며, 이후 2018년 전라문화유산연구원...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봉황리 지비 고분군(鳳凰里芝飛古墳群)은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 924번지와 924-1번지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남-북으로 뻗은 구릉의 동쪽 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봉황리 지비 고분군은 2004년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부안군』 작성 시 조사 과정에서 최초로 보고되었다. 당시 보고에 따르면 남-북으로...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부곡리 성메산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토성. 부곡리 토성(富谷里土城)은 해발 74m의 성메산 정상부와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를 감싸고 있다. 삼국 시대~고려 시대의 토성으로 추정된다. 편축(片築)을 한 동쪽 성벽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협축(夾築) 방식으로 토루(土壘)를 쌓은 산성이다. 부곡리 토성이 자리하고 있는 옛 보안현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
-
757년에서 1416년 사이 전라북도 부안군 북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부령현(扶寧縣)은 통일 신라 때 부안군 북부 지역에 설치하였던 지방 행정 구역인 현(縣)이다. 본래는 백제의 개화현(皆火縣)이었는데, 신라가 병합한 후인 757년(경덕왕 16) 지방 행정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부령현(扶寧縣)으로 고치고, 전라도 고부군(古阜郡)이 거느리는 영현(...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지석묘(支石墓)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서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卓子式)[북방식],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인 바둑판식[남방식],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뚜껑돌로 덮는 개석식 등이 있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扶安龜岩里支石墓群)의 ‘구암리(龜岩里)’라는 지명은 가장 규모가 큰 7호...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부안 김씨 종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세거하였던 부안 김씨의 고문서들은 그곳에 거주하였던 김종덕·김종규·김형복·김을술의 소장 문서들을 중심으로 그 수량이 거의 700점에 이르고 있다. 그 중 김종덕의 소장 문서들은 현재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의 부안 김씨 종중 재실인 세덕각(世德閣)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중 6종 8...
-
1862년 부안현의 수령과 아전의 수탈, 착취 등에 맞서 부안 민중이 저항한 사건. 1862년(철종 13) 진주 민란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한 봉기에 대응하여 조정은 각지에 안핵사(按覈使), 암행어사, 선무사(宣撫使) 등을 파견하였다. 당시 익산(益山), 금구(金溝), 부안의 봉기를 수습하기 위한 호남 선무사(湖南宣撫使)로는 조귀하(趙龜夏)를 파견하였다. 이에 부안 군중 1,0...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백산에 있는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 산성. 부안 백산성(扶安白山城)은 해발 47.4m의 백산(白山) 정상부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환호 시설을 한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의 산성이다. 부안 백산성에 대한 직접적인 문헌 기록은 없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천지기(天智紀)」에 “부여풍(扶餘豊)이 백촌(白村)에 가서 일본의 구원군을 맞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
고려와 조선 시대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 설치되었던 봉수의 분포 양상과 역사적 의미. 조선 시대 전라도 황해안[서해안] 지역을 통과하는 봉수는 5봉수로(烽燧路) 중 여수 돌산도에서 서울 남산까지 연결된 5거 루트 직봉과 간봉이 통과하는 곳으로, 모두 14개소의 봉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봉수는 그 흔적만 남아 있을 정도로 훼손되어 정확한 구조, 형태, 규모 및 관...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연변 봉수. 부안 점방산 봉수(扶安占方山烽燧)는 조선 시대 5봉수로 중 순천 돌산도에서 서울 남산을 이어 주던 제5거 루트의 직봉에 해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부안]현의 서쪽 60리[23.56㎞]에 있다. 남쪽으로 월고리[봉수], 북쪽으로 계화도[봉수]에 응한다[在縣西六十里 南應月古里 北應界火島]”라고...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일원과 동중리 상소산 중턱을 감싸고 있는 조선 시대 읍성. 부안읍성(扶安邑城)은 상소산(上蘇山)[114.9m] 중턱을 감싸고 있는 내성(內城)과 읍내 일원을 두르고 있는 외성(外城)을 포함하고 있는 평산성(平山城)으로, 조선 시대 부안현(扶安縣)의 치소성(治所城)이다. 부안읍성은 1416년(태종 16)에 부령현(扶寧縣)과 보안현(保安縣)을 병합하여 상소산으로...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 설치한 수군진. 조선은 1397년(태조 6) 5월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를 혁파하고 ‘진(鎭)’을 설치한 후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배치하였다. 전라도에는 목포·조양·옥구·흥덕 4곳, 경상도에는 합포·강주·영해·동래 4곳, 충청도의 순성(蓴城)·남포(藍浦)·이산(伊山) 4곳, 황해도의 풍천(豊川)·옹진(瓮津) 2곳, 강원도의 삼척·간성 2곳 등 모...
-
조선 시대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1416년(태종16) 12월 보안현(保安縣)과 부령현(扶寧縣)을 통합하여 부안현(扶安縣)으로 고쳤다. 1414년(태종 14) 보안현을 부령현에 합쳤다가 다음 해에 또 나누었고, 그해 8월에 다시 합쳤다. 또 다음 해인 1416년(태종 16) 7월에 나누었다가 결국 12월에 다시 보안현과 부령현을 합쳐서 부안현(扶安縣)으로 하...
-
고려와 조선 시대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역리에 설치된 역. 부흥역은 전라도의 6개 역도(驛道)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삼례도(參禮道)에 속하였다. 삼례도에 속한 역은 전주 지역의 삼례역·반석역·앵곡역, 여산 지역의 양재역, 태인 지역의 거산역, 정읍 지역의 천원역, 임실 지역의 오원역·갈담역, 임피 지역의 소안역, 함열 지역의 임곡역, 고부 지역의 영원역, 부안 지역의 부흥역, 김...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사산리 사산(蓑山)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사산리 산성(士山里山城)은 해발 105.4m의 사산 정상부 주위를 두루고 있는 토성으로, 삼국 시대에 토루(土壘)을 쌓고 회랑도(回廊道)를 설치하였다. 사산리 산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다. 산 이름인 사산은 ‘도롱이[뉘역]뫼’로 불리고 있는데, 산봉우리의 모양이 도롱이로 둘러쳐 있는 것처럼...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사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사산리 신흥 고분군(士山里新興古墳群)은 부안군 주산면 사산리 산44번지 신흥마을에 분포하고 있다. 사산리 신흥 고분군은 2004년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부안군』 작성 시 조사 과정에서 최초로 보고되었다. 부안군 주산면의 남쪽 능선 지표상에 10여 기의 돌방무덤이 노출되어 있는데, 육안으로 확인되...
-
고려 전기 고려와 송나라의 사신이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을 거쳐 왕래하던 교통로. 고려가 건국될 즈음인 916년 거란이 요(遼)를 건국하고, 5대 10국의 분열을 종식한 송(宋)이 960년(광종 11) 중국을 통일하며 동북아시아의 국제 질서가 재편되었다. 고려는 개방적인 정책을 추진하여 주변 국가와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특히 고려는 송나라와의 외교와 무역을 중시하였는데 사신이나 학...
-
4세기 초에서 7세기 중엽까지 전라북도 부안군의 역사. 백제와 지반(支半)[부안]이 만나는 근초고왕의 남방 정벌에 대해 『일본서기(日本書紀)』는 “바다 서쪽의 여러 한(韓)을 이미 그대 나라에게 주었다.”거나 “해서(海西)를 평정하여 백제에 주었다.”는 말로 나타난다.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해서제한(海西諸韓)’을 ‘한반도 서남해의 제한(諸韓)’이라고 하면, 이것은 곧 369년(...
-
기원 전후부터 300년쯤까지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역사. 관련 기록에 따르면 고대 한반도 남부에는 1~2개의 소규모 정치체(政治體)가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결국엔 78개가 세워질 정도로 성장, 발전하였다. 오늘날의 부안과 연관된 경기도, 충청도 및 전라도 일대의 마한 지역에는 54개의 정치체가 지역 단위로 독립적인 모습으로 존재하였다. 여러 마을[邑落]이 결속하여 하나의 소국으로 발...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상소산에 있는 백제 시대 토성. 상소토성(上蘇土城)은 해발 114.9m의 상소산(上蘇山) 정상부 주위를 두르고 있는 삼국 시대의 테뫼식 토성이다. 상소토성의 초축(初築)에 대한 고문헌 기록은 없지만 조선 시대에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한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안 성곽조에 “토축이며 둘레는 1,188척[약 360m], 높이는...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상입석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서림 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일제 강점기의 바위 글씨. 19세기 중엽~20세기 중엽에 서림 공원의 혜천(惠泉)을 중심으로 부안 지역의 시인 묵객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어, 지은 시나 글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 서림 공원 암각서(西林公園巖刻書)는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239-10번지 서림 공원에 있다. 혜천을 중심으로 부안 지역 시인 묵객들의 시나...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조선 후기 부안현감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비석은 부안현감이었던 삼암(三巖) 조연명(趙然明)의 유적비(遺蹟碑)를 비롯하여 모두 18기가 확인된다. 휼민 선정비(恤民善政碑) 5기, 청덕·청백 선정비(淸德·淸白善政碑) 5기,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영세송덕비(永世頌德碑) 2기, 유적비 2기, 기념비 1기, 기타 3기 등이다. 조연명은...
-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 선사(先史)[prehistory]는 역사(歷史)[history]와 구분되는 시간적·공간적 영역으로서 문자 기록이 없던 시대를 말한다. 문자를 이용하여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시대보다 이전 시대, 곧 역사 이전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그리고 기원전의 철기 시대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성중엄(成重淹)[1474~1504]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계문(季文), 호는 청호(晴湖)이다. 좌찬성 성억(成抑)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성세경(成世鏡)이고, 할아버지는 성염(成廉)이며, 아버지는 성팽로(成彭老)이다. 전라북도 부안군에 세거하는 전주 최씨의 입향조(入鄕祖)인 옹암 최생명(崔生明)이 그의 외할아버지이다. 성중엄은 1474년...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주산면 소산리 묵방산에 있는 청동기 시대~삼국 시대 산성. 소산리 산성(所山里山城)은 묵방산[146m] 정상부의 능선을 감싸고 있는 산성으로 청동기 시대~삼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토성으로, 성벽은 산 경사면을 깎아 회랑(回廊)을 두고 성책(城柵)을 둘렀다. 소산리 산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전영래[『전북 유적 조...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손비장(孫比長)[?~?]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영숙(永叔), 호는 입암(笠巖)이다. 아버지는 현감 손민(孫敏)이고 부인은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화를 당한 도봉(道峯) 손홍적(孫弘績)과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 보존에 공이 있는 한계(寒溪) 손홍록(孫弘祿)이 그의 증손이다. 손비장은 1464년(세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손승경(孫承憬)[1540~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전(慶基殿)[사적 제339호]의 태조(太祖) 어진(御眞)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존하는 데에 힘썼으며, 왜적과 싸우다가 양성(陽城)[현 경기도 안성]에서 전사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오(士悟), 호는 초은(楚隱).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손비장(孫比長)의 현...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손홍적(孫弘績)[1510~1549]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언선(彦善), 호는 도봉(道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문관 부제학 손비장(孫比長)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巡衛) 손중로(孫重老)이다. 손홍적은 1540년(중종 35) 소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1543년(중종 38)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官檢閱)이 되었다. 1547...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수문산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2020년까지 수문산성(修文山城)을 대상으로 한 시굴·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어 산성의 초축 시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표 조사 때 수습된 유물을 근거로 고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문산성은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336-4번지에 있다. 이곳은 부안군 부안읍의 주산 상소산(上蘇山)에서 장군산을 거쳐 서북...
-
조선 시대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역원. 역원은 전근대 시대에 지방에 출장 가는 관원들을 위해 설치한 숙박 시설로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사원에 부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승려들이 업무를 맡기도 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사원을 원으로 전환하거나 신축하여 공무를 비롯하여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하...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쪽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신덕소(申德所)는 특수 행정 구역으로, 부안군 관내에는 신덕소 외에도 고촌향(鼓村鄕)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1 전라도 전주부 부안현 조에 “속향이 1이니 고촌이요, 소가 1이니 신덕이다[屬鄕一 鼓村 所一 申德].”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
-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약 1만 년 전 시작하여 기원전 2000년 무렵까지 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를 중점적으로 만들어 쓰던 시대. 신석기 시대는 보편적으로 뗀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지만, 돌을 알맞게 다듬은 후 일부 또는 전부를 갈아서 쓰는 간석기도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석기 제작은 구석기 시대와 큰 차이를 보이는 문화적 특징이다. 돌감으로는 자갈돌을 비롯하여 화강암, 점...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무신. 안충남(安忠男)[?~1592]의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고려의 좌복야 안영의(安令儀)의 후손이며, 직제학(直提學) 안초(安超)의 7세손이다. 아들은 정유재란 때 전사한 안경방(安景邦)이다. 안충남은 무과에 급제하여 도총부 경력(經歷)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申砬)의 휘하에서 전쟁에 참여하여 많은 적을 무찔렀으나,...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양산리에 있는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 조개더미. 현재의 부안군 계화면 양산리 일원에 살던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 사람들이 바다와 갯벌에서 식량 자원을 채취한 후, 조개껍데기와 생활 쓰레기를 일정한 지점에 지속적으로 버리면서 양산리 조포 조개더미가 형성되었다. 해발 10m에 위치하여 바다와 갯벌에서 식량 자원을 확보하는 데 용이하였을 것이다. 양산리 조포 조개...
-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역리 고성산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산성. 역리 산성(驛里山城)은 해발 68.3m의 고성산(古城山) 정상부와 남쪽으로 두 갈래로 뻗어 내린 산줄기를 감싸고 있는 토성이다.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부령현(扶寜縣)의 치소지(治所地)로 알려져 있다. 삼국 시대에 부안은 백제의 개화현(皆火縣)이었으며, 당시 치소지는 현재의 구지리 토성(九芝里土城)으로...
-
전라북도 부안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부안은 산·바다·평야가 한데 어우러진 지리와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동진면의 반곡리 토성 부근에서 채집된 구석기 편은 동진강 주변에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역사·문화가 전개되었음을 보여 준다.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격하 패총[조개더미]과 함께 변산면 마포리, 보안면 신복리, 계화면 일대에서도 패총이...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염창산에 있는 고려 시대 산성. 염창산성(廉倉山城)은 동진강(東津江) 하구에 자리한 염창산(廉倉山)[52m] 정상부를 한 바퀴 두른 산성이다. 2020년 현재까지 염창산성을 대상으로 시굴·발굴 조사가 추진되지 않았으며, 단지 지표 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학계에 보고되었다. 따라서 산성의 축성 시기와 그 역사성이 상세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다. 염창산...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리에 있는 삼국 시대 토성. 영전리 토성(英田里土城)은 부안군 보안면 소재지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해발 26.3m의 야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평지 토성이다. 영전리 토성에 대한 기록은 『문헌비고(文獻備考)』 여지고(輿地考) 해방서해조(海防西海條)에 “고군영 한 곳이다. 보안폐현 남쪽 7리[약 2.75㎞] 길 곁에 있다. 작은 성채이다. 지금은 모두 훼손...
-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라북도 부안 지역 등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 지역에 출몰하여 약탈을 일삼은 일본 해적 집단의 침입. 왜적(倭賊), 즉 왜구(倭寇)의 침입은 삼국 시대에도 빈번하였다. 그러나 고려 멸망의 주 요인의 하나였을 정도로 고려 말과 조선 초에 특히 피해가 컸다. 왜구는 본래 ‘왜가 도둑질한다’라는 뜻이었지만, 고려 말 이후 침입·약탈·살육·방화 등의 만행 규모가...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용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궁안리·창북리의 염창산에 있는 백제 시대 토성. 용정리 토성(龍井里土城)은 1990년대 초 지표 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지만, 2020년 현재까지 시굴·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성 시기 및 역사적인 의미가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지표 조사 때 기벽이 비교적 두껍고 돗자리 문양이 시문된 삼국 시대 회청색 경질 토기 편이 수습되어 백제...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용화동에 있는 삼국 시대 토성. 2020년 현재까지 용화동 토성(龍化洞土城)에 대한 시굴·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산성의 축성 시기를 상세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표 조사 때 수습된 유물을 근거로 고대 산성이라 추정하고 있다. 용화동 토성은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711-10번지 주변에 해당한다. 부안군 계화면 소재지의 남쪽 구릉지로, 서북쪽...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우금산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산성. 우금산성(禹金山城)은 우금산(禹金山)[329m]의 울금 바위를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의 산줄기를 연결하는 포곡식(包谷式)의 석성이다. 백제 멸망 후 부흥 운동의 본거지 중 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산성은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것이다. 우금산성은 1974년 9월 24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20...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
-
고려 후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이 80여 년간 원의 지배를 받던 시기. 고려는 건국 이래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렸다. 성종(成宗) 대 이래 세 차례나 거란의 침입을 겪었으며, 여진이 세운 금(金)과 중원의 송(宋), 그리고 거란과의 다자 관계 속에서 벼랑 끝 외교를 벌이기도 하였다. 13세기 이후에는 거의 30년 동안 여섯 차례나 몽골의 침입을 받았으며, 급기야 80여 년에 걸친 암울...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봉화봉에 있는 조선 시대의 연변 봉수. 월고리 봉수(月古里烽燧)는 조선 시대 5봉수로 중 순천 돌산도에서 서울 남산을 이어 주던 제5거 루트의 직봉에 해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4, 부안현 월고리 봉수조에 “월고리 봉수는 현의 서쪽 75리[약 29.45㎞]에 있다. 남쪽으로 무장의 소응포산과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점방산과 연결...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월천리 유관 고분군(月川里有冠古墳群)은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유관마을에 위치한다. 주산[231m]의 남쪽 사면 하단부인 해발 50m~90m 내외 지점에 산발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월천리 유관 고분군은 2004년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부안군』 작성 시 조사 과정에서 최초 10여 기가 보고된 이래,...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돌...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관아(官衙)란 조선 시대 때 관원들이 공무를 보던 건물로, 각 도(道)·군(郡)·현(縣) 등의 수령이 있는 고을과 기타 관원이 파견되는 지역에 있었다. 한양 도성 내의 관아는 사적 공간이 없었지만 지방 관아에는 수령이 사무를 보는 동헌(東軒)과 사적 공간인 내아(內衙)가 함께 있었다. 위도 관아(蝟島官衙)는 부안군 위도면...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에 있는 위도진 첨사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후기에 세운 비. 위도 관아(蝟島官衙)는 위도진(蝟島鎭)의 첨사가 근무하던 청사로, 조선 시대 서남 연해 지방을 관할하던 관청이다. 당시 위도진의 관할 지역은 고군산, 우포, 법성포, 금오포 등으로 진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건립한 것으로 도서 지방에 세워졌던 관아 건물...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에 설치한 수군진. 위도진은 군산 선유도의 군산진과 함께 황해의 길목에 자리하여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호남 지역의 중요성과 강화도 방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17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전라도 입암(笠岩), 금성(金城), 격포 등지에 성을 쌓아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또한, 중국 어...
-
고려와 조선 시대 형법에 따라 전라북도 부안군 일원에 죄인을 유배하던 곳. 고려와 조선에서는 죄인을 연고지나 타향으로 유배하는 형벌을 시행하였다. 『고려사(高麗史)』「형법지(刑法志)」에는 3등급의 유형(流刑)이 명시되어 있는데, 대체로 사형을 선고받은 죄인의 감형과 가중 처벌을 위한 부가형으로 유배형이 시행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대명률(大明律)』에 의거하여 유형이 더 세부적으로...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전주 최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유절재(留節齋)는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 자락에 있는 전주 최씨(全州崔氏) 송애군파(松涯君派)의 재실(齋室)로, 유절재 안에 보관되어 있는 1천여 점의 고문서와 전적들을 ‘유절재 소장 고문서(留節齋所藏古文書)’라 한다. 이들 가운데에는 2020년에 보물 제2062호로 지정된 「최광지 홍패(崔匡之紅牌)」가...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 또는 고려 시대의 토성. 유천리 토성(柳川里土城)은 사적 제69호인 부안 유천리 요지(扶安柳川里窯址)에 자리하고 있으며, 부안 청자 박물관 동쪽의 유천마을 버스 정류장 남쪽에 있는 토성이다. 토성의 평면 형태는 동-서 방향의 장방형이며, 남서쪽 모서리 부분에는 남쪽으로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꺾이는 외성(外城)이 있다. 유천리 토성은 왜...
-
조선 후기 부안에서 활동한 학자. 유형원(柳馨遠)[1622~1673]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이다.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유관(柳寬)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 유위(柳湋)는 현령을 지냈으며, 할아버지 유성민(柳成民)은 진사시에 합격한 후 정랑(正郞)을 지냈다. 아버지 유흠(柳𢡮)은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지내다가 유몽인(柳夢寅)의...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의상봉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2011년에 의상봉(義湘峯)[545.4m] 일대에 대한 지표 조사를 통해 의상산성(義湘山城)의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지만, 2020년 현재까지 정밀 지표 조사 및 시굴·발굴 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의상산성은 변산반도 국립 공원 내 의상봉 동북쪽 기슭 8부 능선에 위치한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및 동진강(東津江)...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명기이자 여성 문인. 이매창(李梅窓)[1573~1610]의 본명은 이향금(李香今)이고, 자는 천향(天香), 호가 매창(梅窓)이다. 계유년에 태어나서 계생(癸生), 계랑(癸娘) 또는 계랑(桂娘)이라고도 한다. 이매창은 1573년(선조 6)에 부안현리 이탕종(李湯從)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관비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매창은 관례대로 10살 무렵부터 기생이 되...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여류 시인 이매창의 묘. 이매창(李梅窓)[1573~1610]은 조선 중기의 명기이자 여류 시인의 한 사람이다. 자는 천향(天香)이며, 스스로 호를 매창(梅窓)이라 하였다. 태어난 해가 계유년(癸酉年)이어서 계생(癸生, 桂生) 또는 계랑(癸娘)이라고 불렀고, 향금(香今)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아버지는 부안현(扶安縣)의 현리인 이탕종(...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이세번(李世蕃)[1484~1526]의 본관은 고부(古阜)이며, 호는 백산(白山)이다.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고부 이씨(古阜李氏) 시조인 문헌공(文憲公) 이경조(李敬祖)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벽동군수(碧潼郡守) 이정(李精)이다. 부인은 석씨이고, 아들로 제주교수 이충현이 있다. 이세번은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5...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덕형(德馨), 호는 도곡(桃谷)이다. 전라남도 함평으로 낙향한 영파정(纓波亭) 이안(李岸)의 현손이다. 죽곡(竹谷) 이장영(李長榮)[1521~1599]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숙부 이억영(李億榮)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이유(李瑜)[1545~1597]는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南山里)에서 태...
-
고려 말 부안 출신의 무신. 임난수(林蘭秀)[1342~1407]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전서공(典書公)’이라고도 불린다. 증조할아버지는 서하공(西河公) 임춘(林椿)이고, 아버지는 순성좌리공신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보안백(保安伯) 임숙(林淑)이며, 어머니는 유씨이다. 제주목사를 지낸 임희재(林熙載)의 동생이다. 부인은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로 슬하에 아들 넷을...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전라북도 부안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에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이다. 한성(漢城)과 평양(平壤)이 함락되었으나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과 조선 수군의 활약 및 명나라의 참전 등으로 7년간 지속되었다. 강화 협상이 결렬된 이후 1597년(선조 30)에 일어난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 천배산에 있는 원삼국 시대~고려 시대 토성. 장동리 토성(壯東里土城)은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 천배산(天培山)[42.8m]의 가장자리를 토루(土壘)의 형태로 두르고 있는 평면 원형의 토성이다. 장동리 토성에 대한 고문헌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 없다. 다만 『고적 조사 자료』에서 “토축(土築)이며 주위는 약 150간, 원형으로 높이는 9척이다[土築 周圍 約...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와 상서면의 경계에 있는 호벌치 일대에서 정유재란 때 의병들이 왜군을 맞아 싸운 싸움터.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영년(金永年), 채홍국(蔡弘國), 고덕붕(高德鵬), 조익령(趙益齡), 이대준(李大俊) 등이 흥덕(興德) 남당(南塘)에서 92명 삽혈 동맹(歃血同盟)을 맺고, 조군향사도감(調軍餉士都監)을 맡아 배풍(排風)에서 왜병과 싸워...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역사. 부안군은 조선이 건국한 후인 1416년(태종 16) 12월 지방 관제를 개정하면서 부령현(夫寧縣)과 보안현(保安縣)을 통합하고 부안현(扶安顯)으로 하였다. 1914년 고부군 관할이었던 백산면을 받아들여 현재의 부안군이 형성되었다. 조선 시대부터 주변 해안 지역에 대한 간척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육지...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조옥곤(趙玉昆)[?~?]의 본관은 함열(咸悅)이며, 자는 대가(待價)이다. 아버지는 조지(趙智)이다. 조옥곤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에서 태어났다. 148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4년(성종 2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02년(연산군 8)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으며 중종 대에는 우부승지(右副承旨),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지포 김구의 묘역. 김구(金坵)[1211~1278]는 고려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부안[부령(扶寧)], 자는 차산(次山)이고,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아버지는 김정(金挺)이고,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초명은 백일(百鎰)인데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17세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고, 22세...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고분군. 진리 벌금 고분군(鎭里筏金古墳群)은 부안군 위도면 진리 벌금마을에 위치한다. 위도 해수욕장에서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 방면으로 180m 가면, 도로를 경계로 하여 우측에 반달 모양으로 튀어나온 구릉지가 나타난다. 고분군은 구릉지 정상부에 분포하고 있다. 부안군 위도면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학계에 보고되었...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
-
조선 후기 효행으로 이름 높았던 부안 출신의 학자. 채달주(蔡達周)[1686~1756]의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자는 달보(達甫), 호는 신재(新齋)이다. 아버지는 채원로(蔡元老)이며, 동생은 채천상(蔡天祥)이다. 부인은 이경수(李慶壽)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와 김용오(金龍五)의 딸 부령 김씨(扶寧金氏)이다. 채달주는 이미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구슬프게 울부짖어 마을 사...
-
부안에 세거하고 있는 평강 채씨의 입향조. 채충경(蔡忠敬)[1377~1463]의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자는 공서(公恕), 호는 괴정(槐亭)이다. 아버지는 채수(蔡琇)이고, 부인은 부안 김씨(扶安金氏)이다. 채충경은 예조 판서를 지냈으며, 만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로 낙향하였다. 산수를 즐겨 부안 상경치(上京峙) 아래 상록산[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상소산]에...
-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고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던 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는 토기와 청동기에 대한 문화적·시대적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무문 토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로 대표된다. 청동기 시대는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기에는 무문 토기의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다. 조기는 미사리 유형(渼沙里類型), 전기는 가락동 유형(可樂...
-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의 청등 고개에서 벌어진 조선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청등 전투는 일본이 1597년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일으킨 정유재란 당시 이유(李瑜), 유의방(柳希芳) 등이 이끄는 의병이 전라북도 부안의 청등 고개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운 전투이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거침없이 북진하여 2개월여 만에 서울과 평양...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제주 고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제주 고씨(濟州高氏)가 부안에 처음 들어온 것은 16세기 초의 일로, 고세호(高世豪)가 처가를 따라서 옥구에서 부안으로 이거하면서부터이다. 고세호의 가문이 크게 번창한 것은 그 손자인 고희(高曦) 때이다. 고희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공로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바로 이것이 제주...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최경(崔勁)[1605~?]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직경(直卿), 호는 월파(月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순성(崔順成)이고, 할아버지는 최위(崔渭)이며, 아버지는 선조(宣祖) 대의 유명한 문인 석계(石溪) 최명룡(崔命龍)[1567~1621]이다. 부인은 뒷날 이른바 ‘우반동 김씨’로 유명한 해옹(海翁) 김홍원(金弘遠)의 딸 부안 김씨(扶安金氏)...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최극성(崔克成)[?~?]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자인(子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광지(崔匡之)이고, 할아버지는 최생명(崔生明)이며, 아버지는 성균진사 최수손(崔秀孫), 어머니는 오백형(吳伯亨)의 딸이다. 형제로 최순성(崔順成), 최필성(崔弼成), 최계성(崔繼成)이 있다. 최극성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났다. 1507년(중종...
-
부안군에 있는 옹정서원에 배향하고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최명룡(崔命龍)[1567~162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윤(汝允), 호는 석계(石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이며, 할아버지는 사성(司成) 최순성(崔順成)이고, 아버지는 단성현감(丹城縣監) 최위(崔渭)이다. 아들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에 녹훈된 최경(崔勁)...
-
조선 전기 부안에서 활동한 학자. 최생명(崔生明)[?~?]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옹암(甕庵)이다. 아버지는 송애(松崖) 최광지(崔匡之)이다. 아들은 최수손(崔秀孫)이고, 손자로 최순성(崔順成)과 최극성(崔克成)을 두었다. 최생명은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다. 소과에 합격한 후 음직(蔭職)으로 관료가 되었다. 그러나 경시전직(京市殿直)을 지내면서 1455년(단종 3)...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학자. 최수손(崔秀孫)[?~?]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고궁당(固窮堂)이다. 할아버지는 송애(松崖) 최광지(崔匡之)이고, 아버지는 옹암(甕庵) 최생명(崔生明)이다. 아들로 최순성(崔順成)과 최극성(崔克成)을 두었고, 손자는 단성현감(丹城縣監) 최위(崔渭)이다. 최수손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났다. 한때 관직에 대한 희망도 있었지만,...
-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무신. 최처중(崔處中)[?~?]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직제학(直提學) 최광지(崔匡之)의 후손이며,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최응남(崔應南)이다. 최처중의 아들 최양필(崔亮弼)은 1651년(효종 2) 별시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이때 거주지가 부안으로 나오며, 아버지 최처중이 훈련원 봉사를 지낸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최처중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부안 김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 자락에 있는 취성재(聚星齋)는 부안 김씨 군사공파(郡事公派)의 파조(派祖) 김광서(金光敍)를 제향하는 재실(齋室)로, 호남 제1의 재실이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규모가 큰 곳이다. 이곳에는 500여 점이 넘는 고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소지(所志), 상서(上書), 단자(單子)...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군. 치도리 고분군(稚島里古墳群)은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 치도마을에 자리하는데, 2개소에 분포하고 있다. 치도리 고분군Ⅰ은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에서 깊은금 방면으로 70m가량 떨어진 산의 동남쪽 기슭[치도리 산85번지]에 있다. 치도리 고분군Ⅱ는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에서 깊은금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150m 가면 서남쪽으로 흘...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이유와 그의 처 부령 김씨를 기리기 위하여 조선 후기에 세운 비. 이유(李瑜)[1545~1597]의 본관은 함평, 자는 덕형(德馨), 호는 도곡(桃谷)이다. 본래 영광에서 태어났지만 부인 부령 김씨(扶寧金氏)를 따라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도화동으로 이거하였다. 당시 부안현감의 후원으로 초가강소(草家講所)를 짓고 은거하며 경사...
-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부터 고려 건국 이전까지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역사. 660년 백제 멸망 이후 부안을 비롯한 백제의 옛 땅은 신라가 아닌 당나라 군의 점령 아래에 놓였다. 부흥 백제국이 실패하고 이 지역은 당령(唐領)의 고사주로서 명맥을 이어 갔다. 당은 옛 백제 땅을 직할 영역으로 삼고자 664년~665년 사이에 1도독부, 7주, 51현 체제로 재편하였다. 즉 동명주[충청남...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서 탁자식과 기반식, 개석식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3만여 기로 추산되며, 이 중 2만여 기가 호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고인돌은 2만 6000여 기로 집계되었는데, 63.3%인 1,665기가 고창군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부안군에는 64곳의 고인돌...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평교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평교리 외거 고분군(平橋里外巨古墳群)은 부안군 백산면 평교리 외거마을에 있는 분구묘이다. 외거마을 남쪽으로 독립적으로 위치한 야산의 동쪽 사면에 2기의 분구묘가 분포하고 있다. 평교리 외거 고분군은 2004년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부안군』 작성 시 조사 과정에서 최초로 보고되어 학계에 알려졌다....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역대 전교와 현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시대에 세운 비. 부안향교는 1414년(태종 14)에 세워졌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으며 지금의 부안향교는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 부안향교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5성(五聖)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소설위(小說位)이다. 부안...
-
부안에 세거하고 있는 태인 허씨 입향조. 허사문(許斯文)[?~?]의 본관은 태인(泰仁)이며, 호는 지재(止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허중민(許仲民)이고, 할아버지는 허윤(許倫)이며, 아버지는 중랑장(中郎將) 허경(許慶)이다.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허사행(許斯行)과 사평(司評)을 지낸 허사제(許斯悌)가 동생이다. 부인은 개성 박씨(開城朴氏)이다. 허사문은 전라도 고부군[현...
-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 허진동(許震童)[1525~1610]의 본관은 태인(泰仁)이며, 자는 백기(伯起), 호는 동상(東湘)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허강(許剛)이고, 어머니는 박우(朴祐)의 딸 충주 박씨(忠州朴氏)이다. 아들로 허구전(許九田)과 허구연(許九淵)을 두었다. 허진동은 1525년(중종 2)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부곡리에서 태어났다. 58세 때인...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희생된 의병들을 기리기 위하여 1965년에 세운 비. 호벌치 전적지(胡伐峙戰蹟地)는 정유재란 때 부안 지역의 의병들이 일본군과 맞서 싸워 혈전을 벌였으나 장렬히 전사한 호벌치 고개에 위치한 싸움터를 말한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흥덕(興德) 사람 채홍국(蔡弘國)이 중심이 되어 부안, 고부, 흥덕, 고창 등지...
-
1597년 정유재란 때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과 보안면의 경계인 호벌치에서 벌어진 조선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호벌치 전투는 1597년 일본이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일으킨 정유재란 때 채홍국(蔡弘國) 등이 이끄는 의병이 전라북도 부안의 호벌치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전투이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거침없이 북진하여 2개월여 만에 서울과 평양을 함락...
-
전라북도 부안군 도동서원에 배향된 문신. 홍익한(洪翼漢)[1586~1637]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초명은 홍습(洪霫),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포(花浦)·운옹(雲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홍서주(洪敘疇)이고, 할아버지는 홍개(洪愷)이며, 생부는 홍이성(洪以成), 양부는 홍대성(洪大成)이다. 1615년(광해군 7)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624년(인조 2...
-
고대 백제가 전라북도 부안군 남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흔량매현(欣良買縣)은 백제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을 중심으로 부안군 남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인 현(縣)이다. 『삼국사기』 권제37 잡지(雜志) 제6 지리(地理)4 백제 조에 “완산 … 고사부리군, 개화현, 흔량매현, 상칠현[完山 … 古沙夫里郡 皆火縣 欣良買縣 上柒縣]”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
-
고대 통일 신라 시대 전라북도 부안군 남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757년(경덕왕 16)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방 행정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백제 때 설치한 흔량매현(欣良買縣)을 희안현(喜安縣)으로 개칭하고, 전라도 고부군(古阜郡)이 거느리는 영현(領縣)의 하나로 편제하였다. 『삼국사기』 권36 잡지(雜志) 제5 지리(地理)3 신라 조에, “고부군, … 거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