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간선수로
-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산언덕. 갈막에서 ‘갈’은 ‘갈라진’의 뜻으로 보이며, ‘막’은 ‘메’가 그 원형으로 보인다. 대리미재하고 산언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부리는 산이라는 백제어이다. 벌응절리에 있는 알묏부리와 그 뜻이 같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등성이라는 뜻의 갈멧부리가 갈막부리로 발음이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갈막부리는 일명 갈망아리로도 불리는 곳으로, 중동 1...
-
경기도 부천시 전역에서 행해졌던 음력 5월 5일 창포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와 씨름을 하던 세시풍속. 부천에선 단오날에 여성들이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릿결을 보기 좋게 손질하는 날이었다. 벌응절리의 용문내, 고리울의 고리울내, 소새의 큰내, 구지말의 구지내, 여월의 베르내 천변에는 자생하는 창포가 많았다. 부천의 여인들은 이들 창포를 캐서 머릿결을...
-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밭. 밭의 모양이 다리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근래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보통 다리미를 대리미라고 했다. 산언덕 모양이 동그랗게 생겼다. 대리미재는 상동 175-4번지 일대의 밭을 이르는 말로 중동~상동 간의 경계를 이루던 곳이다. 밭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조그만 언덕 같은 산이었는데, 이것을 깎아 밭으로 개간을 했다. 물문개에서 서쪽으...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서 대장동 일원에 걸쳐 있는 들길. 대장동이 부천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혔는데, 대장들길은 많은 부천시민들이 찾아와 생기와 활력이 가득한 마을로 거듭나고 사계절 정취를 느끼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2010년 오정동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을 통해 조성되었다. 대장동 들판은 1925년도 일제시대 때 설립된 동부간선수로로 인해 넓은 들판이 형성되었다....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던 둑. 데부둑은 경기도 김포시에서 지금의 대장동 큰말을 지나 삼정동을 거쳐 약대, 사래이, 구지말까지 뻗어 있던 둑이다. 일본말로 둑이라는 뜻인 ‘데보’에 우리말 ‘둑’이 합쳐진 데보둑이 변화하여 ‘데부둑’으로 불렸다. 굴포천의 직포가 서해의 바닷물이 밀려들어 농업용수로 쓸 수 없어 한강 물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중국 노동자들을 동...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들. 번개들은 『조선지지자료』에 대장리에 속하는 전야(電野)로 되어 있고 ‘번개뜰’이라고 해놓았다.번개들의 번은 ‘벌어진’의 뜻이며, 개는 포구의 우리말이다. 우리말 번개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전(電)’이 된 것이다. 즉 포구를 막아 둑을 만들고 들을 만들어서 들을 넓혔다는 뜻의 번개들이 된 것이다. 번개들은 대장 큰말에서 섬말 앞에 새보둑을 만들면서...
-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 멀미산 칠일약수터에서 발원하여 성곡동, 원종동, 오정동으로 흘러드는 하천. 『조선지지자료』에는 하오정면 여월리에 속하는 별인천으로 별인내로 표기되어 있다. 베르네의 명칭은 베르네·비린내·비리내 등으로 불린다. 내[川]는 하천을 의미하고, 별·베리·비린·비리는 어원적으로 벼랑을 의미한다. 원래, 벼랑·낭떠러지를 베락·벼락·별·벼루·비루·베리·비리 등으로 썼다....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큰말에서 섬말까지 이어진 둑.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지지자료』에는 신보(新洑)로 기록되어 있다. 새보둑은 새로 만들어진 둑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새보둑은 원종동인 거칠개에서 시작한 방오리보에 연결하여 큰말을 지나 섬말까지 연결된 둑이다. 1900년경 서해의 바닷물이 밀려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 새보둑이 조성되면서...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섬말은 한강수리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독립적인 섬이었던 곳으로 섬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섬말이라 불린 듯하다. 한강수리조합이 생긴 뒤에도 서해 조수가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는 나무토막과 널빤지를 이어 만든 다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 다리가 없어지고 섬말과 큰말 사이에 징검다리가 놓였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 흔적인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다. 섬...
-
경기도 부천에서 집이 이사한 날 향나무로 만든 소코뚜레를 문 앞에 걸어놓거나 안방에 걸어놓은 풍습. 예전 부천은 주로 농사를 지어온 농촌이었기에 소는 농사일을 하는데 무엇보다 소중했다. 소가 없으면 사람의 힘으로 일을 해야 했는데 일이 더디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이 자식 키우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소를 잘 길들여서 쟁기질을 하거나 마차를 끌게...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에 있던 하천. 소사는 ‘소사’로 표기하고 토박이말로 ‘소새(쇠)’로 읽는다. ‘가는(고은) 모래’, 또는 철광과 관련 있는 지역이라는 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소사에 흐르는 하천이라 하여 소사천이라고 했다. 성주산 자락의 소사동을 중심으로 모래나 쇠가 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배수가 잘 되어 ‘조리터’라 불러 왔으며, 구릉과 야산이 많은 지역이다. 배수가 잘...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벌판. 『조선지지자료』에는 전야(前野)로 표기되어 있다. 방오리보를 따라 형성된 들을 가리키는데, 앞벌은 큰말 앞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방오리보가 축조되기 전에는 개별적으로 둑을 막아 농사를 지었지만 방오리보가 축조된 후 커다란 벌판이 조성되었다. 현재는 넓게 형성된 대장리들에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근에는 덕산초등학교 대장분교장이 위...
-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자연 마을. 외따로 떨어진 마을이라고 하여 외딴말로 불렸다. 장말이 동남쪽 방향에 길게 언덕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동북쪽에는 약대가 있었다. 겉저리의 고비골에서 흘러 내려온 냇물이 마을 남쪽을 지나갔다. 부평수리조합이 생긴 뒤로는 동부간선수로 지선이 일곱집매 동쪽에 있었다. 마을에 큰물이 차면 주민들은 넘말이나 장말로 피신을 해야 했다. 그만큼 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