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래이
-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산언덕. 갈막에서 ‘갈’은 ‘갈라진’의 뜻으로 보이며, ‘막’은 ‘메’가 그 원형으로 보인다. 대리미재하고 산언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부리는 산이라는 백제어이다. 벌응절리에 있는 알묏부리와 그 뜻이 같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등성이라는 뜻의 갈멧부리가 갈막부리로 발음이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갈막부리는 일명 갈망아리로도 불리는 곳으로, 중동 1...
-
경기도 부천시 전역에서 행해졌던 음력 5월 5일 창포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와 씨름을 하던 세시풍속. 부천에선 단오날에 여성들이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릿결을 보기 좋게 손질하는 날이었다. 벌응절리의 용문내, 고리울의 고리울내, 소새의 큰내, 구지말의 구지내, 여월의 베르내 천변에는 자생하는 창포가 많았다. 부천의 여인들은 이들 창포를 캐서 머릿결을...
-
경기도 부천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 온 신앙. 경기도 부천 지역에서는 당고사(堂告祀)·우물고사·느티나무고사·장승제·산고사(山告祀)를 주로 지내 왔다. 특히 중동 장말도당굿은 부천 고유한 전통 민간신앙으로 잘 보전되어 있다. 이는 부천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개발이 늦게 시작되었던 것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천 지역의 민간신앙을 성격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자연 마을. 명칭의 유래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홍수 때 산에서 모래가 마을이나 논까지 많이 밀려와 사래이라 하였다는 설,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지주들이 묘지기나 마름에게 보수로 사례를 한 땅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 장말과 솔안말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사래이라고 하였다는 설 등이다. 조선시대에는 부평군 석천면 상리 지역...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상동의 옛 지명으로는 사래이 또는 사랑리(沙浪里), 구지리, 장포들[張浦坪], 신상리, 벽돌막[새마을], 신마분리(新馬墳里) 등이 있으며, 논에도 따로 이름이 있었다. 홍수 때 산에서 마을과 논까지 모래가 많이 밀려 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사래이라 하였는데 이처럼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전답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곳이었다. 또한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상동의 옛 지명으로는 사래이 또는 사랑리(沙浪里), 구지리, 장포들[張浦坪], 신상리, 벽돌막[새마을], 신마분리(新馬墳里) 등이 있으며, 논에도 따로 이름이 있었다. 홍수 때 산에서 마을과 논까지 모래가 많이 밀려 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사래이라 하였는데 이처럼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전답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곳이었다. 또한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상동의 옛 지명으로는 사래이 또는 사랑리(沙浪里), 구지리, 장포들[張浦坪], 신상리, 벽돌막[새마을], 신마분리(新馬墳里) 등이 있으며, 논에도 따로 이름이 있었다. 홍수 때 산에서 마을과 논까지 모래가 많이 밀려 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사래이라 하였는데 이처럼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전답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곳이었다. 또한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
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법정동으로서 상동은 행정동인 상동, 상 1동, 상 2동, 상 3동으로 형성되어 있다. 송내역 및 중동역 중심으로 역세권이 형성되었고, 신구 도시의 기능이 병존하며 문화 및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고 있다. 상동의 옛 지명으로는 사래이 또는 사랑리(沙浪里), 구지리, 장포들[張浦坪], 신상리, 벽돌막[새마을], 신마분리(新馬墳里) 등이 있으며...
-
경기도 부천에서 집이 이사한 날 향나무로 만든 소코뚜레를 문 앞에 걸어놓거나 안방에 걸어놓은 풍습. 예전 부천은 주로 농사를 지어온 농촌이었기에 소는 농사일을 하는데 무엇보다 소중했다. 소가 없으면 사람의 힘으로 일을 해야 했는데 일이 더디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이 자식 키우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소를 잘 길들여서 쟁기질을 하거나 마차를 끌게...
-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는 자연 마을. 장말은 장씨 마을의 줄임말로 덕수장씨가 이 지역에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풀이이다. 덕수장씨 시조 장순룡의 12세손인 장몽기가 경기도 평택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조선 중기 이후 4백여 년 동안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말의 장자는 긴 ‘장(長)’자로 성씨 ‘장(張)’자와 다르다. 이는 곧 장씨가 정착하기 전에도 장말로...
-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들 이름. 장포들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석천면 상리에 속하는 장포평(長浦坪)으로 표기되어 있다. ‘장포’는 긴 포구를 뜻하므로, ‘긴 포구 앞에 있는 들’이라는 의미로 장포들이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장포들은 물문개는 아주 오래 전에 포구였지만, 이 일대가 아주 넓은 들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농사지은 쌀을 세곡미로...
-
경기도 부천 지역에 분포하는 기복이 적고 비교적 평탄한 저지대. 부천에 분포하는 평야는 북부와 서부에 있는 굴포천의 여러 지류가 중동과 오정동에서 합류하면서 형성된 충적 평야이다. 이 평야는 대체로 부천역 주변을 중심으로 송내동과 상동 및 중동 지역을 거치는 벌판이다. 부천의 평야는 낮고 평탄한 지형을 이루는 곳이 많기 때문에 교통이 발달했고,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좋은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