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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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倭寇 |
영어의미역 | Japanese Invader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상열 |
[정의]
고려 말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출몰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일본 해적집단.
[개설]
고려시대에 왜구는 일본의 이키[壹岐]·쓰시마[對馬]·기타큐슈[北九州]·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등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왜구는 충정왕·공민왕·우왕에 이르는 40여 년간 100~500척의 선단으로 활동 무대를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의 연안까지 넓혔으며, 때로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노략질을 하였다. 경기도 강화의 교동과 예성강 어구 등에서 노략질을 하였으며,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수도 개경의 치안까지 위협하였다.
이에 고려는 1377년(우왕 3) 최무선(崔茂宣)이 건의한 화통도감(火㷁都監)을 설치하여 화약과 화포 등 각종 화기를 제조함으로써 왜구 격퇴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정치의 불안정과 국가 재정을 크게 기울게 하여 고려 멸망의 큰 원인이 되었다. 이성계는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세운 것을 계기로 하여 정치 세력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피해 상황]
『고려사(高麗史)』에는 1378년(우왕 4) 부천에 왜구가 두 차례 침입하여 피해를 입힌 기록이 전한다. 그 이전인 공민왕 때에는 수안·동성·통진·김포·양천 등에 왜구가 여러 차례 침입한 기록이 보인다. 이때 부천도 왜구의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유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