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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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貴子-代表小說-遠美洞- |
영어의미역 | People of Wonmid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충환 |
[개설]
198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원미동 사람들』은 1979년 문단에 데뷔한 양귀자의 장편 연작 소설로, 1980년대 소설계의 커다란 수확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부천시 원미동을 배경으로 소시민들의 삶의 애환을 소녀의 순수한 눈으로 잘 묘사하고 있는 『원미동 사람들』은 적나라한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부천의 이곳저곳을 매우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11가지 이야기]
『원미동 사람들』에는 「멀고 아름다운 동네」·「불씨」·「마지막 땅」·「원미동 시인」·「한 마리의 나그네 쥐」·「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방울새」·「찻집 여자」·「일용할 양식」·「지하 생활자」·「한계령」 등 총 11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처받은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화물차 짐칸에 실려서 서로의 체온과 담요로 추위를 참아내면서 ‘나’와 우리 가족은 부천시 원미동 23통에 있는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원미동엔 비슷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우리 동네 지주(地主)라고 불리는 강노인은 시가 몇 억짜리 땅에 한사코 푸성귀 따위나 가꾸겠다고 고집하는 통에 고흥댁과 박씨는 온갖 감언이설을 다 늘어놓지만 허사이다. 결국 강노인은 큰아들 용규에게 빚을 준 동네 사람 여덟 명의 빚 독촉에 땅을 팔고 만다.
몽달씨라는 별명을 가진, 약간 돈 원미동 시인도 이곳에 산다. 그는 동네 사람들의 무시를 받아가며 김반장 가게에서 일곱 살짜리와 노닥거리며 지낸다. 그러다가 하루는 밤에 깡패를 만나 물씬 두들겨 맞는다. 김반장은 오히려 그를 쫓아낸다. 이런 김반장의 행동을 모두 엿본 일곱 살짜리 아이는 큰 소리로 동네 사람들을 부른다. 그러자 지물포점의 주씨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
은혜네는 이사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천장과 벽에 습기가 배어 물이 흐르고 작은방의 난방 파이프가 터져 버리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 그런데다 이번에는 목욕탕 사건이 터지는 통에 연탄 가게와 지물포를 겸한 주씨에게 일을 맡긴다. 주씨가 이것저것 다 고친다지만 전문가가 아니라고 트집을 잡으며 공사비 바가지를 씌울까 봐 아내는 조바심을 낸다. 그러나 주씨는 18만 원이라는 견적보다 훨씬 적은 7만 원을 받고 공사를 한다. 서비스로 옥상 공사까지 해 주며 오히려 미안해한다. 일이 끝난 후 주씨와 술을 마시며 주씨 자신의 고생담을 듣게 된다. 또, 가리봉동을 비오는 날마다 간다는 말도 듣는다.
행복사진관을 하는 엄씨는 한강 인삼찻집을 하는 30대 여자와 바람이 났는데, 남편의 외도를 안 부인이 인삼찻집 여자와 대통 싸움을 하는 통에 바람피운 것이 들통나 동네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엄씨는 인삼찻집 여자에 대해 미안함과 동정심을 갖는다. 결국 인삼찻집 여자는 동네 사람들의 눈총에 못 이겨 힘들게 낸 찻집을 떠나고 그 자리에는 경자 친구가 하게 될 화장품 할인 코너가 들어선다.
경호네는 연탄 주문, 쌀 배달 등으로 알뜰히 살아 김포슈퍼까지 내게 되자, 김반장의 형제슈퍼와 출혈 경쟁이 붙는 바람에 헐값에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동네 사람들만 신바람이 난다. 그런 와중에 김포슈퍼와 형제슈퍼 사이에 싱싱청과물점이 생겨 부식 일체와 완도김까지 팔았다. 이것을 알게 된 경호네와 김반장은 휴전을 맺고 힘을 합쳐 싱싱청과물의 수입을 막아 버린다. 약이 오른 싱싱청과물은 김반장에게 대들어 싸움이 붙지만 김반장에게 물씬 얻어맞는다. 이 싸움으로 김반장은 신임을 잃어 동네 사람들의 미움만 산다.
연립주택의 지하실 생활을 하는 우리 가족은 용변 보는 일에 눈치를 보느라 힘들어 한다. 주인집 화장실 사용이 쉽지 않아서 그 동안 남의 집 신세를 져 가며 그럭저럭 해결해 왔다. 그런데 이집 저집에서 문단속을 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더욱 난처해진 ‘나’는 주인집을 잔뜩 원망한다. 하지만 주인집 여자는 유부남을 끌어들여 사는 처지라서 문을 함부로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녀를 오히려 동정하게 되었다.
[1980년대 한국의 자화상]
1987년에 초판이 발행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십 쇄를 바꿔가며 꾸준히 사랑받아온 『원미동 사람들』은 이제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원미동 시인」 전문이 실릴 만큼 문학적 가치와 고전으로서의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1987년에 출간된 『원미동 사람들』이 오랜 세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격이 다른 슬픔’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양귀자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 치욕적인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애환을 섬세한 손길로 복원시켜 놓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렇게 지지리도 못난 삶을 살면서도, 수많은 절망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틀어쥐고 있다. 「마지막 땅」의 강노인은 ‘기름진 농토를 지키려는 의지’를, 「찻집 여자」의 행복사진관 엄씨는 자신의 예술혼을,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에 등장하는 임씨는 ‘양심’을 끝끝내 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슬프지만, 또 그 때문에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살아남기 위해, 뒤쳐지지 않기 위해 우리들이 발버둥 치면서 슬그머니 놓아버린 그 어떤 소중한 가치들을 작품의 주인공들은 보석처럼 간직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원미동 사람들』에는 이념이나 정권과 상관없는 우리네 선량한 이웃들이 점차 변두리로 밀려나며 타락하고 절망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하생활자는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다. 또 서울서 밀려난 인생들은 다시는 서울로 진입하지 못한다. 그들이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가는 그들의 처지를 바꾸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미동 사람들』은 이처럼 1980년대라는 시대와 돈만을 중요시하는 천박한 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원미동은 바로 그 시대와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담은 축소판인 것이다. 아무리 사회 전체의 민주화가 진척되었다 하더라도 원미동이 드러내는 삶의 모습이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는 옛 풍경이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 삶, 돈이 최고의 가치로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상처받고 절망하는 삶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한, 아직도 원미동은 이 땅에서 낯선 거리가 아니다.
[양귀자가 말하는 원미동]
양귀자는 『원미동 사람들』의 후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전략) 전혀 낯설었던 원미동(遠美洞)이란 곳을 무턱대고 찾아왔던 그때의 심정도 이랬었다. 이사해야 할 날짜는 다가오고, 어느 날 문득 전철을 타고 내려와서 기웃거리다가 우리 형편과 비교적 맞는 것 같아서 살게 된 곳이 이 원미동이었다. 이름이, 동네의 어설픈 외양과는 별 상관없이 낭만적이었다. 그것도 위안은 되었다.
한 동네에서 6~7년을 산다는 일은 이웃 아이들의 이름을 알고, 이웃들이 무슨 벌이를 해서 먹고 살며, 앞으로의 희망은 무엇인가를 흐릿하게나마 짐작하고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들은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충청도에서, 강원도에서, 그야말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다. 연탄 배달도 하고 날품팔이도 하며 공장에도 다니고 그렇게들 산다. 또 회사원도 많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장사를 해서 먹고 살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이주(移住) 현상을 무슨 표본실처럼 보여주는 이 도시의 안간힘을 나는 동병상련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연작을 구상하게 되었다…….
원미동은 우리 사회 어느 곳에든지 있다는 사실을 실증해 주었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원미동은 이사가 잦은 동네이다. 정들 만하면 이웃은 떠나고 그 자리엔 낯선 이웃이 자리를 잡는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진행의 현상이 축약되어 있음을 실감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곳이 이 동네이다. 그것을 느끼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느끼며 ‘살아가는’ 일은 고달프다.”
[되살아나는 ‘원미동 사람들’]
부천시는 인구 86만 명을 헤아리는 전국 유수의 대도시라는 외화(外華)와는 달리 역사적·문화적으로 심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 경주나 전주와 같은 오랜 역사를 지니지 못한 신흥 도시이고 박경리의 『토지』나 이문구의 소설 같은 명작의 배경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에게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과 같은 좋은 작품이 있어 시민으로서 자부와 위안을 받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소도시의 미미했던 한 작은 동네의 이름을 통해 부천을 전국에 알리는 귀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부천시와 원미구청은 여러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특별히 부천시 구 원미구청 앞에 ‘원미동 사람들’의 조형물과 ‘원미동 사람들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원미동 사람들』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와 이 작품의 의미를 널리 홍보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부천대학교 김상철 교수의 글을 인용해 본다.
“『원미동 사람들』연작 가운데 하나인 「원미동 시인」은 이유조차 알지도 못하면서 당해야 했던 폭력적 상황을 그려낸 소설이다. 정체모를 괴한에게 두들겨 맞는 몽달의 모습은 비록 영화 『화려한 휴가』처럼 눈물과 분노를 동시에 자아내게 하는 화면은 없어도 그 행간에 담겨 있는 의미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김반장의 의리 없는 행동을 비난하고 있지만, 기실 김 반장은 다름 아닌 우리의 슬픈 자화상임을 분명 깨달을 수 있었다.
가난한 소시민의 실상과 소망을 담은 이 소설은 작가 양귀자의 부천시 원미동 체험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작품이다. 양귀자는 이 소설로 일약 중앙 문단에 이름을 올리는 행운을 얻었다. 작가적인 명성을 어찌 행운으로 돌릴 수 있으랴만 드라마로까지 방영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 덕에 서울의 위성도시인 부천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부천보다 더 유명해진 ‘원미동’ 덕분에 행정구역 명칭도 ‘원미구’라 이름하고, 구 원미구청 자리에는 『원미동 사람들』과 관련한 자료와 조형물을 설치해놓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정작 작품의 실제 배경이 되는 원미동 23통 일대는 무관심했다. 혹시 자료나 체취라도 느껴보고자 그 일대를 학생들과 함께 뒤져보지만, 『원미동 사람들』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근처 가게에 들러 『원미동 사람들』에 관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지레 손사래를 치며 나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뿐이랴, 작가와 작품에 관해 묻는 내게 오히려 면박을 주는 아주머니도 있다.
“그까짓 것 알아낸다고 밥이 나와요, 쌀이 나온답디까? 난 모르닝께 저리 비키시쇼.” 야멸치게 쏘아붙인 이 말에 나는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분의 말도 이해는 된다. 대체 『원미동 사람들』이 그 아주머니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그저 내 앞가림이나 잘 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을. (중략)
사정이 그렇다면 지금 뉴타운 건설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는 원미동 일대의 주민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는 영광(?)을 누렸던 원미동 일대의 공간을 복원하는 일일 것이다. 복원이란 현장을 있는 그대로 두자는 말이 아니다. 작품에 등장한 공간적 배경들의 자취만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것이다. 그곳에 우리의 자녀들이 몽달이와 김반장에 대하여, 아니 어린 경옥이와 ‘원미동’에 대하여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場)은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1980년대 숨죽이며 지냈던 우리가 다시는 그런 비극을 맞지 않도록, 그토록 뭇매를 맞던 몽달이의 아픔을 같이 느끼며, 그를 구하기 위해 두 손을 불끈 쥐고 안타까워하던 어린 경옥이의 마음을 헤아려 봄 직하지 않은가. 작품 속의 이기주의자인 김 반장이 바로 나의 슬픈 자화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던 『원미동 사람들』의 현장을 지켜야하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책무이자, 가뜩이나 문학적 토양이 척박한 이곳 부천에 소시민의 삶을 형상화하여 우리네 삶의 실상을 대변하고자 했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이 글은 부천 시민의 문화 의식의 일단에 대한 지적과 함께 문학적 자원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대안적 성격의 글로 평가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원미구청에서는 이미 조성된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를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개보수를 계획하고 있으며, 원미1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행복한 원미동을 가꿔 나가는 원미동 사람들』이란 소책자를 2007년 10월부터 발행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원미동 사람들 문학의 밤’ 행사를 열고 있으나, 이러한 행사는 부천시 차원에서 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과 연관을 지어 다양한 지역 문화 축제로 승화 발전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