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인 고포국(古蒲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증산리 유적에서 주구묘 14기가 확인되었으며, 가중리 유적에서 7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쌍북리 두시럭골 유적에서는 덧널무덤과 원형 수혈유구들이 조사되었고, 가탑리 유적에서는 널무덤과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가탑리 가탑들 유적...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설치된 성곽.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서는 부여 부소산성과 부여 나성[외곽성]을 포함한 30여 개의 산성들이 산재하여 있다. 산성들은 대부분 낮은 구릉의 정상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축조 시기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부여 지역의 역사·지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의 성왕은 53...
전라북도 진안군의 주화산에서 시작하여 서북쪽으로 이어져 충청남도 부여군의 부소산에 이르는 산줄기. 금남정맥(錦南正脈)은 금남호남정맥의 서쪽 끝 지점인 주화산에서 호남정맥과 남북으로 나뉘어 북쪽의 대둔산과 부여의 부소산으로 이어지는 137.7㎞의 산줄기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사비도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산성. 부여 청마산성은 높이 200m 이하의 산지와 곡간부에 설치된 포곡식 산성이다. 백제 산성 중 최대급에 해당하는 규모로 사비도성의 최후 방어성으로 추정된다. 부여 청마산성의 축조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성내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와당과 토기, 내탁 구조로 축조된 성벽 단면 형태 등으로 미루어 백제...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던 부여 일대 고적 보존 및 조사 활동 기관. 일제 강점기 일제는 일선동조론에 바탕을 둔 일본과 조선의 동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동화 정책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경주, 부여 등 고도(古都)에 대한 고적 조사 및 고적의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특히 부여 지역의 경우 고적 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백제 사비기와 일본 고대 아스카[飛鳥]...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부소산에 있는 백제 3충신을 모신 사당. 삼충사(三忠祠)는 백제의 3충신인 성충(成忠), 흥수(興首) 그리고 계백(階伯)을 모신 사당이다. 656년(의자왕 16) 백제 좌평이었던 성충은 국가가 위태로움에 처하였음을 알고 의자왕에게 간언하다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죽음에 임박하자 당과 신라를 막을 수 있는 방책을 의자왕에게 바쳤으나 의자왕은 성충의 계획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에서 발원하여 석목리를 거쳐 정동리에서 가증천과 합류하여 금강으로 들어가는 하천. 석목천(石木川)의 유역 경계에는 높이 209.3m 이하의 구릉성 산지들이 있다. 남서쪽에서 가장 높은 산지가 나타나고 북서쪽에 높이 172.9m의 경계가 있다. 석목천은 구릉성 산지 사이를 흘러 가증천에 합류한다. 석목천 양쪽 기슭으로 면적이 넓지 않은 농경지가 분포한다....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의 왕도와 관련된 역사 유적. 부여(扶餘)는 삼국 시대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다. 백제는 538년(성왕 16)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의 왕도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사비 천도는 계획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비왕도는 도성제(都城制)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조영되었...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용전리(龍田里)의 용 자와 석정리(石井里)의 정 자를 따서 용정리(龍井里)라 하였다고 한다. 용전[용밭]에는 소정방이 조룡대(釣龍臺)에서 용을 낚아 채서 떨어져 썩어 밭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