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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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인 고포국(古蒲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증산리 유적에서 주구묘 14기가 확인되었으며, 가중리 유적에서 7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쌍북리 두시럭골 유적에서는 덧널무덤과 원형 수혈유구들이 조사되었고, 가탑리 유적에서는 널무덤과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가탑리 가탑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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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538년부터 660년까지 사용된 백제의 별칭. 백제 성왕은 538년(성왕 16) 백제의 중흥을 위해 사비(泗沘)로 천도하면서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扶餘)’로 하였다. 남부여로의 개칭은 부여를 계승한다는 정체성을 천명한 것으로, 왕실 세력을 결집하고 이성 귀족과 차별화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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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부여현은 옛 백제의 도읍으로 조룡대(釣龍臺)·낙화암(落花巖)·자온대(自溫臺)·고란사(皐蘭寺)와 같은 백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었다. 『택리지』에서는 부여의 지역적 특징으로 경치가 매우 훌륭하며, 땅이 기름져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다만 도읍으로는 지대가 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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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 왕도 지명. 사비(泗沘)는 소부리(所夫里)에서 연원하며, 성왕이 538년(성왕 16)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천도함으로써 백제의 왕도가 되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략으로 사비성이 함락된 후 당나라가 사비도성에 백제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所夫里州)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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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년 백제 성왕이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인 사비로 도읍을 옮긴 사건. 백제는 475년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아 왕도 한성(漢城)이 함락되고 개로왕(蓋鹵王)과 가족이 몰살하자 다급히 웅진(熊津)으로 천도하였다. 웅진 도읍기 초기에는 제22대 문주왕(文周王)이 재위 3년 만에 암살되고, 뒤이어 13세에 즉위한 제23대 삼근왕(三斤王)도 재위 3년에 갑자기 죽는 등 혼란스러웠으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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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26대 왕. 성왕(聖王)[?~554]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명농(扶餘明穠) 또는 부여명(扶餘明)이다.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武寧王)[재위 501~523]의 아들이며, 제27대 위덕왕(威德王)[재위 554~598]과 제28대 혜왕(惠王)[재위 598~599]의 아버지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성왕·명왕(明王)·성명왕(聖明王)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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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 신라 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泗沘)[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 소부리군(所夫里郡)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