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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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鴻山 金川 石虹橋 重創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 183-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건립 시기/일시 | 1657년 - 홍산 금천 석홍교 중창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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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2월 31일 - 홍산 금천 석홍교 중창비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10호 지정 |
현 소재지 | 부여 홍산현 관아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 183-4 |
원소재지 | 홍산초등학교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산로111번길 7[북촌리 148] |
성격 | 비 |
재질 | 화감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125㎝, 너비 75㎝, 두께 17㎝[창립비]|높이 90㎝, 너비 50㎝, 두께 20㎝[중창비] |
문화재 지정 번호 |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10호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는 금천 석홍교 중수와 관련된 조선 후기의 비석.
[개설]
홍산 금천 석홍교는 원래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금천리에 있던 다리로 ‘세냇다리’, ‘쇠냇다리’라고 불렸다. 홍산 금천 석홍교와 관련한 비석은 창립비와 중창비 2기가 전하고 있다. 2기 모두 비문이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어려우며, 일부 내용을 통하여 1657년(효종 8) 중창비가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건립 경위]
홍산 금천 석홍교 중창비의 정확한 건립 경위는 전하는 바가 없다. 다만 비문의 일부 내용을 보면 1657년 홍산현 남쪽의 금천에서 승려들이 시주하여 금천 석홍교를 중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홍산 금천 석홍교 중창비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 183-4번지에 있다. 조선 시대 홍산현의 객사와 동헌 등의 관청이 있는 부여 홍산현 관아의 진홍루 옆 담장을 따라 비석들과 함께 세워져 있다.
[형태]
홍산 금천 석홍교 중창비는 높이 90㎝, 너비 50㎝, 두께 20㎝이다. 화강암으로 윗부분이 아래보다 약간 넓으며, 윗부분은 둥글게 처리하였다. 홍산 금천 석홍교 창립비는 높이 125㎝, 너비 75㎝, 두께 17㎝이며, 화강암으로 중창비보다 약간 큰 편이나 형태는 유사하다.
[금석문]
홍산 금천 석홍교 중창비는 비문이 음서되어 있으나 마멸이 심한 상태이다. ‘홍산현(鴻山縣) 남거금천(南距金川) 지강중(之江中)□□ 입비(立碑) 공양대시주(供養大施主)□□ □□□ 순치십사년사월일(順治十四年四月日)’이 판독된다. 순치 14년은 효종 8년, 즉 1657년을 의미하며 승려들의 공양을 바탕으로 중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립비 비문의 내용은 ‘□□□□금천교(金川橋) 대시주(大施主)□□□’ 2열만 희미하게 보일 뿐 나머지는 판독이 어렵다. 이를 통하여 금천교와 관련한 비석이며, 대시주(大施主)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홍산 금천 석홍교 중창비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홍산초등학교 교문 앞에 선정비들과 함께 늘어서 있었으나, 현재는 홍산면 남촌리 부여 홍산현 관아 내로 옮겨졌다. 마멸이 심하여 비문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홍산 금천 석홍교 중창비는 조선 후기 금천 석홍교를 중수하고 나서 세운 비석으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