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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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 靑山城 |
영어공식명칭 | Cheongsanseong Fortress, Buyeo |
이칭/별칭 | 각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심상육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부여 청산성 사적 제5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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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 부여 청산성 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4년~2015년 - 부여 청산성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 청산성 사적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부여 청산성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 일원 |
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800m[둘레] |
소유자 | 문화재청 등 |
관리자 | 부여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개설]
부여 청산성은 백제 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다. 부소산 내부에 있는 산성 중 군창지 일원을 두른 둘레 약 800m의 테뫼식 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변천]
부여 청산성은 1970년대 성 주변의 주민들이 산성이 있는 산을 ‘풀뫼’라 부르고 있어 조선 시대 부여현의 청산성(靑山城)으로 인식되었다가, ‘풀뫼’의 발음을 ‘뿔뫼’로 볼 수 있다고 하여 605년 축조되었다고 기록된 각산성(角山城)으로 비정되었다. 위치는 부소산의 동쪽 약 50m의 산지에 해당하는데, 백제 후기 도성의 외곽인 부여 나성과 연결된다고 보았다.
2011년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와 백제고도문화재단에 의하여 부여 청산성 일원을 발굴 조사한 결과, 조선 시대의 기록에 나타난 청산성과 관련된 성벽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고, 산정부에서 백제 시대의 건물지와 부여 나성 성벽만 확인되었다. 또한 605년 축조된 각산성이 전라도 지역의 산성으로 비정되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여현 고적 조의 청산성 역시 부소산 내의 군창지 일원을 두른 산성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현재 부여 청산성은 백제 후기의 도성지인 사비도성지의 동북 모서리로서의 지정학적 위치와 발굴로 확인된 건물지 등으로 사비도성의 국가 시설물이 축조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위치]
부여 청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번지 일원에 있다. 부소산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높이 50m의 산지에 있어 주변 조망권이 탁월하다. 부여 청산성 북쪽으로 사비도성의 외곽인 부여 나성의 성벽이 지나고 있다.
[형태]
부여 청산성은 2014년과 2015년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와 백제고도문화재단[현 백제역사문화연구원]에 의한 발굴 조사가 있었다. 2014년과 2015년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산정부를 계단식으로 평탄한 대지를 조성한 후 굴립주 및 적심 건물 17동과 목주열·축대·배수 시설 등 백제 사비기의 국가 시설물이 세워졌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조선 시대의 기록에서 확인되는 부여 청산성은 부소산의 동쪽 산봉에 있는 테뫼식의 토석혼축으로 축조된 산성이다.
[현황]
부여 청산성은 발굴 조사 후 백제 건물의 잔존 흔적을 정비하여 놓은 상태이며, 부여 나성의 성벽 또한 복원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