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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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井洞里 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자왕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서현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3월~2003년 5월 - 정동리 유적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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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정동리 유적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자왕리 |
성격 | 복합 유적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와 자왕리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복합 유적.
[개설]
정동리 유적(井洞里 遺蹟)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동북쪽에 있는 능선의 정상과 사면에서 확인된 복합 유적이다. 백제 사비 시기 주거지와 건물지, 돌방무덤과 독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위치]
정동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북동쪽 정동리와 자왕리에 있다. 크게 두 지점으로 구분되는데, A지점은 주장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능선의 서남사면이고, B지점은 주장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능선의 남사면에 해당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정동리 유적은 부여읍과 공주시 탄천면을 연결하는 국도 제40호 부여-논산 간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03년 3월부터 5월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5개 지점에서 백제 시대의 건물지 7기, 수혈주거지 5기, 저장구덩이 1기, 야외 화덕터 1기,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 4기, 독무덤 2기, 횡혈묘 1기, 청동기 시대의 돌널무덤과 옹관묘, 고려 시대의 수혈주거지, 도기가마, 수혈유구, 조선 시대의 수혈주거지, 분묘 등이 확인되었다.
[형태]
백제 시대 고분은 A-1지점에서 돌방무덤 1기, 독무덤 2기, A-2지점에서 돌방무덤 3기, B-1지점에서는 횡혈묘 1기가 확인되었다. 돌방무덤은 4기 모두 잔존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벽석이 작은 판상석으로 축조된 횡구식으로 추정된다. 바닥에는 깬돌이나 잡석들이 깔려 있다. 독무덤은 2기 모두 소형이다. 2호묘는 회청색 경질의 옹을, 3호묘는 대상파수부항아리와 자배기 2점을 횡치시켜 만들었다. 횡혈묘는 2호 건물지와 중복되는데 경사면을 직교되게 파서 만든 것으로 길이 76㎝의 소형이다. 건물지는 A-1지점에서 고분보다 더 아래쪽에서 확인되었고, B지점에서 건물지 6기와 수혈주거지, 저장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경사면을 ㄴ자형으로 파고 만들었는데 사면 아래쪽은 대부분 유실되었다. 크고 작은 원형의 주공들이 정연하지 않지만, 대체로 방형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어서 벽주건물로 추정되는데 1호와 7호 건물지가 대표적이다. 건물 내부에는 깬돌을 이용하여 만든 쪽구들 시설이 건물의 바깥까지 이어지고 있다. 7호 건물지에는 건물의 바깥, 사면 위쪽에 구가 둘러져 있다. 수혈주거지는 대체로 방형이며 주거 내부에는 깬돌을 이용하여 만든 쪽구들 시설이 잘 남아 있는 사례도 있다.
[출토 유물]
정동리 유적의 돌방무덤에서는 백제 사비 시기의 철제 널못이 소수 출토되었고, 독무덤과 횡혈묘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건물지와 수혈주거지에서는 백제 사비 시기 대상파수부자배기, 대상파수부호, 대상파수부시루 등이 다수 출토되었고, 경질의 삼족배, 뚜껑접시, 병, 짧은목항아리, 옹, 쇠손칼, 철촉도 소수 출토되었다. 7호 건물지에서는 회청색 경질의 옹들과 짧은목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는데, 왜의 경질 토기인 스에키[須惠器] 옹도 포함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정동리 유적은 사비도성의 동북쪽 외곽에 있으며, 생활 공간뿐 아니라 매장 공간까지 함께 확인되고 있다. 또한 벽주건물의 모습과 일상용 토기가 다수 출토되어 당시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