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903
한자 金德彬
영어공식명칭 Kim Deokbi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 - 김덕빈 출생 추정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김덕빈 부여군에서 3·1 운동 참여
추모 시기/일시 2018년연표보기 - 김덕빈 대통령 표창 수훈
출생지 현북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덕빈(金德彬)[1883~?]은 1883년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북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2일 김태호(金泰昊), 이백순(李伯純)은 천도교 논산교구실에서 민영순에게 「독립선언서」 약 40매를 수령하였다. 이백순은 밤 2시경 논산 읍내에 도착하여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길 위에 뿌렸다. 3월 2일 밤 9시경, 김태호도 「독립선언서」 일부를 가지고 부여 천도교구실에 도착하였다. 김태호는 김종석(金鍾錫), 황우열(黃宇㤠), 박성요(朴性堯), 이범인(李範仁), 최규석(崔奎錫) 등 6명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며 배포를 부탁하였다. 김종석 등 6명은 「독립선언서」 배포 방법, 배포자 등을 협의하고 실행하였다. 황우열은 5매를 가지고 3월 3일 오전 2시 부여면 왕포리[현 부여읍 왕포리] 손익희(孫益熙)의 집에 도착하여 손익희와 조원상(趙元祥)에게 「독립선언서」를 교부하고, 배포를 의뢰하였다. 조원상은 5매 중 2매를 부여면 중정리[현 부여읍 중정리]와 염창리 도로에 뿌리고 나머지 3매를 석성면 현북리[현 부여읍 현북리]의 김덕빈에게 전달하였다. 김덕빈은 부여면 염창리[현 부여읍 염창리]에 2매를 뿌리고 나머지 1매는 초촌면 신암리의 강면기에게 주었다. 김덕빈은 1919년 3월 13일 체포되어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 60도를 선고받고 고초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덕빈의 공적을 기려 201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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