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947
한자 趙重九
영어공식명칭 Jo Junggu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 1월 14일연표보기 - 조중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0년 - 조중구 광제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15년 - 조중구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활동 시기/일시 1917년 - 조중구 중국 망명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조중구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3월 21일 - 조중구 임시정부 외무부 임시선전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2년 - 조중구 상하이에서 중한호조사 교제과 간사 선임
몰년 시기/일시 1942년 7월 26일연표보기 - 조중구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조중구 건국포장 수훈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조중구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출생지 청송리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 지도보기
활동지 합니하 - 중국 지린성 퉁화시 퉁화현
활동지 상해 - 중국 상하이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정의]

일제 강점기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중구(趙重九)[1880~1942]는 1880년 1월 14일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일제의 국권 침탈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1914년 5월 서간도 합니하(哈泥河)에서 김창식(金昌植)·강봉주(姜鳳周)·윤이병(尹履炳) 등 1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광제회(光濟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미국 등지에서 발간되던 『신한민보(新韓民報)』를 국내에 들여와 발행하다가 1915년 초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조중구는 출소 후 1917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1920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어 1922년 4월까지 의정원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3월 21일에는 임시정부 외무부 임시선전원에 임명되었고, 호북성 등지에 파견되어 8월까지 선전 활동을 수행하며 대중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호남성에 파견되어 호남성교육회를 비롯한 각 단체에 한국 독립을 선전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9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 이사회’에서는 교제과 간사로 선출되었다. 주로 국민당 계열의 혁명 세력과 관련 있는 지역에 있던 중한호조사는 상하이에 총사를 두었고, 각지에 지사를 설립하여 일제 침략에 공동 대응하고자 하였다. 조중구는 교제과 간사로서 한중 양국의 친선과 공동 항일 투쟁을 위해서 힘썼다. 1922년부터는 중국군에 입대하여 무장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1942년 7월 2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중구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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