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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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道 朗山祠 |
영어공식명칭 | Sedo Nangsan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사동로 170-22[수고리 58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성 |
건립 시기/일시 | 1742년 - 세도 낭산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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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57년 - 세도 낭산사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수고리 582-2으로 이건 후 개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6년 - 세도 낭산사 사당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3년 - 세도 낭산사 삼문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2월 5일 - 세도 낭산사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21호 지정 |
현 소재지 | 세도 낭산사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사동로 170-22[수고리 582-2] |
성격 | 사당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사당]|3칸[묘문] |
측면 칸수 | 2칸[사당]|1칸[묘문] |
문화재 지정 번호 |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21호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수고리에 있는 풍양 조씨의 조선 후기 사당.
[개설]
세도 낭산사(世道 朗山祠)는 풍양 조씨 3대인 죽계(竹溪) 조응록(趙應祿)[1538~1623], 수죽(脩竹) 조방직(趙邦直)[1574~1637], 낙수(樂叟) 조광형(趙光亨)[1606~1682]을 모신 사당이다. 조응록은 임진왜란 때 세자를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에 올라 풍성군에 봉해졌다. 인조반정 후 관작을 추탈당한 후 임천(林川)으로 돌아가 저작에 힘썼다. 저서로는 『죽계유고(竹溪遺稿)』와 『죽계일기(竹溪日記)』가 있다. 조방직은 조응록의 아들로 여러 공을 세워 소무공신(昭武功臣), 영사공신(寧社功臣)이 되었다. 저서로 『수죽유고(脩竹遺稿)』가 있다. 조광형은 조방직의 아들로 과거에 장원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저서로 『낙수유고(樂叟遺稿)』가 있다. 세도 낭산사는 2014년 2월 5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세도 낭산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사동로 170-22[수고리 582-2]에 있다. 부여군 세도면행정복지센터에서 북서쪽으로 약 3.5㎞ 떨어진 수고리 가충골마을 뒤쪽에 있다.
[변천]
1742년(영조 18)에 향사의 공론으로 사랑강(砂郞江) 옆에 조광형의 사당을 세우고 ‘낭호향현사(朗湖鄕賢祠)’라 편액하고 봄과 가을에 향사하였다. 1856년(철종 7) 사림의 공론으로 조응록과 조방직을 함께 모시기로 하였다. 1857년 현재 부여군 세도면 수고리인 금천동(金川洞)으로 사당을 옮겨 ‘낭산사’로 개칭하였다. 1966년 사당을 건립하고, 1983년 삼문을 건립하였다.
[형태]
세도 낭산사는 사당과 묘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묘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이다.
[현황]
세도 낭산사에서는 매년 3월 10일 춘향제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