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해
-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는 부녀요. 「계모 심술 노래」는 계모가 전처 딸의 초례청에서 혼인을 시샘하여 사위에게 딸이 곱새[곱사등이]라며 거짓을 노래한다. 이에 현명한 사위는 한삼소매 들고 각시를 보니 서모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2007년 진해·웅천 향토 문화 연구회에서 발행한 『우리 고장 문화유산』의 420쪽에 실려 있다. 이...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진해 지역의 효자. 김정한(金正漢)[?~?]은 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 살았던 효자로 부모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하루는 부친이 병상에 있을 때 추운 겨울임에도 병환 중의 부친을 위해 연못에서 얼음을 깨어 고기를 잡아 드리고 눈이 쌓인 골짝에 산나물도 캐내어 드리면서 쾌유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간병을 위한 정성에도 병세가 위독해지자 변(便...
-
일제 강점기 창원시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 김차형(金此炯)[1924~?]은 1943년 경상남도 진해의 일본군 제51 해군 항공창(第51海軍航空廠)에서 군속(軍屬)으로 근무하던 중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민족차별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김차형은 김병길(金秉吉), 최연종(崔演鍾) 등 11명과 함께 항일결사 ‘일심회(一心會)’를 조직하였다. 일심회...
-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는 부녀요. 2007년 진해·웅천 향토 문화 연구회에서 발행한 『우리 고장 문화유산』의 420쪽에 실려 있다. 이는 경상남도 진해구 풍호동 326번지에 살고 있는 송봉수[62세 때]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민요의 특징인 4·4조와 4·5조를 기본 형식으로 하고 있으며 가창 방식은 독창이다. 「나물 노래」는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
-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는 부녀요. 「논매기 노래」는 논매기와 관련하여 계모의 학대를 노래한 타령조의 비기능요이다. 2007년 진해·웅천 향토 문화 연구회에서 발행한 『우리 고장 문화유산』의 420쪽에 실려 있다. 이는 경상남도 진해구 풍호동 664번지에 살고 있는 김복남[당시 62세]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논매기 노래」는 생모 생전의...
-
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수(朴永守)[1914~1950]는 경상남도 진해에서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야학 활동을 주도하였다. 1930년 9월부터 김상복(金相福), 박홍목(朴弘穆) 등과 함께 진해 이동리(泥洞里) 사립 야학교에서 비밀 결사 ‘이동 독서회 동맹 구락부(泥洞讀書會同盟俱樂部)’를 조직하였다. 박영수는 독서회 활동을 통해 식민지 지배 체제를...
-
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재황(裵齋晃)[1895~1966]은 경상남도 진해의 개통 학교와 계광 학교 고등과를 수료하고 상경하여 경성 청년학교 중학과를 졸업하였다. 주시경(周時經)의 한글학교에서 국어학을 공부하였으며, 19세에 고향으로 내려와 계광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승복(僧服)으로 혹은 노동자 차림으...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진해 출신의 효자. 서지순(徐志淳)[1734~1801]은 23세 때 웅산에서 내려온 한 마리의 범이 군졸과 읍민에게 쫓겨 지금의 웅천 1동인 망덕리(望德里)로 와서 뜻밖에 그의 부친을 물고 말았다. 이를 본 서지순은 낫으로 범을 찔러 죽였다. 그러나 부친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으며 죽은 범의 암컷이 마을에 내려와서 사람들을 위협하였다. 이에 서지순...
-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신태우(申泰佑)[1851~1926]의 문집. 신태우는 자가 경선(敬善)이고, 호는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석범(申錫範)이고 어머니는 풍산(豊山) 홍씨(洪氏) 홍희택(洪羲宅)의 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지고 난 뒤 항상 지내던 서실(書室) 근처에 산소를 썼는데, 주변 한 사람이 앉을...
-
조선시대 경상남도 진해 지역의 효자. 어경덕(魚敬德)[?~?]은 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 살았던 효자로 어려서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전선대장(戰船代將)으로서 전선을 타고 군사 훈련에 참가했다가 뜻밖에 실화(失火)로 익사하였다. 그도 따라 죽으려고 몸을 바다에 던졌으나 문중 사람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 어경덕은 그...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진해 출신의 효자. 윤치언(尹致彦)은 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 살았던 효자로 부모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여 집에 기르는 개도 그의 효심을 알고 그를 도왔다. 어느 날 외출하였을 때 집안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 아버지가 아들을 찾으니 집에 기르던 개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신발을 물고 짖어대니 그...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진해 출신의 효자. 정창진(鄭昌鎭)[?~?]은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후손으로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하늘에 기도하면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병세를 호전시켰다. 어머니가 병이 깊을 때도 그렇게 하였고, 6년 동안 탕약(湯藥)을 달여 봉양하였다. 마을에서 여러 번 그 효행을 기록하여 포상(襃賞)을 청하...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조맹임(曹孟任)[1905~?]은 1928년 ‘웅동 여자 청년회’를 창립하여, 여성 운동으로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이 문맹 퇴치 운동이었다. 또한 야학교를 설립하여 가르쳤고, 사립 계광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기도 하였는데, 재주가 많아서 음악과 무용도 가르쳤다고 한다. 바느질 솜씨가 좋아서 찾아오는 여...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해 지역의 수건 공장에서 발생한 노동 운동. 일제 강점기 진해의 여좌동에 있는 후쿠다 타월 공장에서 여자 노동자 절반 이상이 동시에 동맹 파업을 단행하였다. 공장주가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을 더 낮추겠다고 하여 동맹 파업을 발생케 하였다. 일제 강점기 진해 지역에는 ‘수건 공장’이 여좌동과 덕산동 두 곳에 있었다. 덕산동에는 공장주가 타나카인 ‘타나카 타월 공...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화천동에 있었던 영화관.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는 1942년경 진해읍 국천정(菊川町) 24번지에 묘락좌(妙樂座)가 있었다. 극장주는 데즈카 쇼이치[手塚松一]로 정원은 420명 규모였다. 해방 이후 화천동 48-15번지 520석 정원의 해양 극장은 진해 극장, 경화 극장, 중앙 극장과 함께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다 2011년 폐관하였다...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전승되는 고기잡이할 때의 민간 신앙.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에워싸여 있어서 바다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생활 무대가 되어 왔다. 그런 가운데 바다가 지닌 신비, 사람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조화에 대한 외경과 공포는 자연스럽게 속신을 낳게 되었다. 경상남도 진해 지역도 바다를 배경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아서 많은 어로 속신이 생겼다. 고기잡이...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운영되었던 교통·통신 제도. 역참(驛站)은 일반적으로 공문서의 전달 및 정부 물자의 수송과 관리들의 왕래 등에 이용된 시설이다. 즉 역(驛)은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에게 역마와 숙식 등이 제공되었던 곳이다. 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숙박 및 공물 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한 역(驛)은 참(站)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