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마을
-
석산마을에서는 오래 옛날부터 2004년까지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서원먼당이나 마을회관 앞 공터(빈 논)에서 마을 주민이 모여 달집태우기를 해왔으나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마을 사정으로 달집태우기가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2008년 2월 21일 석산마을 경로회장 김기수 옹이 달집태우기를 하자고 주장하면서 다시 행사가 이루어졌다. 김기수 옹은 1962년...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 출신인 김명윤의 유품인 검 2점. 김명윤(金命胤)[1564~1609]은 부사를 역임한 한(漢)의 아들로 김해 답곡리에서 출생하여 창원의 동쪽 도산리(道山里)[현재의 석산마을]로 이주하여 살았다. 1583년 19세로 과거에 급제하고, 파주·충주·진주·홍주·제주 등지에서 목사로 재임하였다. 그는 1592년(선조 25) 파주목사로 재임...
-
석산마을 인근 지역에서 단감 재배를 가장 빨리 시작한 곳은 김해시 진영읍이다. 단감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부터 일본인에 의해 재배되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까지 단감나무 한 그루가 대학생 1명 등록금을 댈 정도로 소득이 좋았다. 이런 단감나무를 석산마을에서 최초로 심은 사람은 지금은 작고한 김기봉 옹과 김재순 옹 형제이다. 김기봉 옹의 경우 당시 가정 형편으로 인해...
-
도봉서원 은 석산마을의 중앙부에 있는 독립구릉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 구릉에는 육중한 와가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데, 배치 또한 구릉을 따라 좌우, 상하로 넓게 포진하고 있어 더욱 웅장하게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마을임을 암시하고 있다. 입지상으로 보면 마치 경주 양동마을에 들어온 느낌이라 할까. 도봉서원은 동산(東山) 김명윤(金命...
-
동산정(東山亭) 은 김명윤(金命胤)의 생전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비록 수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온전한 원래 모습은 아니지만, 동산정과 관련해 지은 시와 글이 전하고 있어 문사(文士)로서의 그의 풍모를 음미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오늘의 동산정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하는 이유이다. 동산정은 석산마을회관 뒤쪽으로 펼쳐진 한옥군의 맨...
-
충주지씨 다음으로 1500년대 중기에 석산마을로 들어온 성씨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석산마을에 들어온 전의이씨 입향조는 이옥성(李玉成)이다. 이옥성은 사헌부감찰을 지낸 후 만년에 둘째 아들 이명하(李明河)[강계부사 역임]와 함께 석산마을로 들어왔다. 그 전에 전의이씨 13세손인 이승간(李承幹)은 조선 태종 때 좌의정을 지낸 하륜의 둘째 사위로, 경상남도 진...
-
석산버스정류소 에서 석산마을 안으로 난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네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세 번째 집이 밀암 김보원 옹의 집이다. 밀암 선생의 부인인 사화댁은 사화리 박정호(朴庭鎬) 씨의 따님으로 이름은 박영석(朴泳石)이다. 이 부부는 현 석산마을 경로회장 김기수 옹의 중매로 인연을 맺었다. 혼인은 1955년 음력 11월 27일 사화리의 박정호 씨...
-
상산김씨가 석산마을로 들어오기까지 흐름을 살펴보면, 경상북도 상주시→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법물리→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퇴천리→김해시 대동면 수안리→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로 들어온다. 상산은 경북 상주의 고지명으로, 상산김씨의 시조 김수가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진 이 후 거주했던 곳이다. 그 후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사이 11세손인 김유화가 경상남도...
-
사람은 누구나 생활의 편리를 위해 특정 지역에 자리 잡아 모듬살이(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과 그 주위에는 이름이 붙게 마련이다. 우리가 만나는 석산리라는 명칭도 누군가가 지은 이름인 것이다. 지명은 땅의 모양, 지표상의 특징적인 사물 등에 의해 붙여진다. 석산리의 이곳저곳에 붙여진 지명을 수수께끼 풀듯 살펴보자. 먼저 마을 이름인 석산(石山)은...
-
석산마을은 현재 상산김씨 동성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상산김씨가 살기 전엔 전의이씨가, 그 이전에는 충주지씨가 자리를 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석산마을에 처음으로 터를 잡은 사람은 천석꾼으로 알려진 지풍헌(池風憲)이라고 한다. 석산마을에 지씨가 살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확인된다. 먼저 충주지씨 족보를 살펴보면 충주지씨 26세손 지...
-
석산마을 입구의 2003년에 포장된 지방도 30호선과 일제강점기 당시 건설된 신작로가 만나는 지점의 남서쪽에 대한불교 해동종 소속의 소원사(素願寺)가 위치하고 있다. 이 소원사의 주지인 수운(水雲) 스님은 본명이 하재권(68세)이다. 수운 스님은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서 태어나 1960년 부산에 있는 동아대학에 다니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퇴하였다. 그 후 마...
-
석산마을의 도봉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3일에 상산김씨 문중의 중요한 행사인 향례가 이루어진다. 이 향례에서 제의를 주관하는 것은 남성들이나,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음식을 마련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등의 상당 부분은 부녀자들의 몫이다. 부녀자들이 향례에서 담당하는 일은 향례에 필요한 제수 준비, 손님 접대를 위한 음식 준비, 손님 접대 등으로 다양하다. 먼저 향례에...
-
지방도 30호선에서 석산마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이 있다. 바로 석산마을 입구에서 마룡으로 넘어가는 신작로로서 일제강점기에 개설된 길이다. 불종과 충효비는 이 길의 중심부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충효비는 북쪽에, 불종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충효비는 1979년 1월 25일 건립되었다. 인근 창원시 북면 무곡리 양촌마을에 세워진 충효비가 1979년 4월 28일...
-
석산마을의 김성문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뒤부터 지금까지 약 40년간 농사만을 지으며 살고 있다. 현재 석산마을 이장 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마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경작하고 있다. 더불어 부인 수천댁(공영선)은 2008년 12월까지 약 20년간 부녀회장 직을 맡아 마을을 위해 일하고 있다. 김성문 씨 부부가 경작하는 땅은 총 41653.08㎡로...
-
사람을 부르는 호칭 중 이름 이외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호(號)와 택호(宅號)이다. 석산마을에서도 사람을 부르는 데 호와 택호를 주로 사용한다. 호는 자신이 스스로를 표시하기 위하여 붙이거나 스승 또는 친구들이 붙여 주는 일종의 별명 같은 것이다. 허물없이 사용하기 위하여 자(字) 이외에 별도로 짓는다. 간혹 해당자의 거주지 원근에 거주하는 명문장가 또는 인격과 학문이...
-
오늘의 상산김씨 문중을 움직이는 조직은 수성회이다. 정식 명칭은 ‘상산김씨종중수성회(商山金氏宗中守城會)’라 한다. ‘수성(守城)’이라는 말이 얼핏 생소하게 들려 어리석은 질문을 드려 보았더니, 회장을 맡고 있는 김근희 씨가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답을 주신다. 일찍이 동산 김명윤 선생이 전란 중에 여러 고을의 목사를 역임하면서 한 번도 적에게 성(城)을 내놓지 않았는데, 그 불패전의...
-
명산 백월산(白月山)을 배경으로 철새의 낙원 주남저수지를 뜰아래 두고 있는 석산마을은 창원의 명문인 상산김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마을의 중심에 자리하여‘랜드마크’가 되고 있는 도봉서원은 이들 김씨의 입향조인 김명윤(金命胤)[1565~1609]을 배향하고 있다. 김명윤은 호가 동산(東山)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이 위기에 처했던 시기를 살았다. 그는 일생...
-
석산마을은 주남저수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주남저수지는 창원시의 대표적인 저수지로 대규모 철새들의 도래지로 유명하다. 이 넓은 저수지 옆에 위치한 석산마을은 언뜻 살펴보면 저수지 옆의 농지가 펼쳐져 있어 예부터 기름진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유한 생활을 영위해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석산마을의 농지는 30~40년 전만 해도 저수지의 혜택을...
-
석산마을은 백월산 자락인 내륙에 위치하지만, 마을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북서-남동으로 흐르며, 마을의 동쪽에 인접하여 주남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주남저수지를 끼고 있는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석산마을을 비롯한 동읍 인근 여러 마을에는 내수면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성한 어업계가 있다. 1922년 주남저수지가 축조되기 이전까지 현...
-
석산마을 동쪽에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하여 2008년 제10회 람사르총회 공식방문지로 지정된 주남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 주남저수지 동쪽에는 낙동강 하류에 형성된 충적평야인 대산평야가 위치하고 있다. 현재 주남저수지는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면서 산남저수지, 주남저수지, 동판저수지 등 크게 3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남저수지가 이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일제강점...
-
창원시 동읍에 있는 석산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주남저수지를 찾아 길을 나서야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동서로 잇는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동창원 IC에서 내리면 국도 14호선을 만나게 된다. 이 길에서 지방도 30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주남저수지 방향으로 1㎞ 가량을 달리면 신방리의 동읍사무소가 나온다. 이 앞을 지나 약 1.5㎞를 더 달리면 유명한 다호리 고분...
-
충과 효를 마을의 지표로 삼고 있는 마을답게 석산마을에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 홀로 남은 부친을 곁에서 모시기 위해 귀향하여 정성을 다해 간병한 지일 선생의 효행이 마을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일 김상균 선생은 석산리 480-1번지에서 아버지 김희룡과 어머니 이점희 사이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석산마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
-
해마다 음력 3월 중순이 되면 석산마을은 여느 때와 달리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2008년에도 예외는 없어서, 4월 18일(음력 3월 13일)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갔는데, 바로 도봉서원에서 동산공 향례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움직임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보이지만, 이웃 마을인 화양리 곡목마을의 김해김씨 문중 사람인 김도원 씨 얼굴도 보이고, 외지에서 온 낯선 얼굴도 여...
-
석산마을에는 예부터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는데, 그 가운데 물와(勿窩) 김상욱(金相頊) 선생도 있다. 김상욱 선생의 자는 인숙(仁叔)으로, 석산마을 상산김씨 입향조로서 1892년 병조판서에 추증된 김명윤 선생의 10세손이다. 물와 선생은 1857년(철종 8년)에 출생하여 1936년 향년 80세로 운명하였다. 처사(處士)로 이름을 날렸던 물와 선생은 ‘정승 세 명...
-
석산마을의 여러 모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석산마을회와 상부계를 들 수 있다. 석산마을회는 석산마을 주민이 모두 속한 대동계(大同契)로 회원간의 친목과 화합으로 마을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석산마을회 회원은 석산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구당 1인으로 하며, 회원 중 가구 전체가 석산마을 외의 지역으로 이사할 경우 주민등록과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