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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012
한자 精兵山
영어음역 Jeongbyeongsan
영어의미역 Jeongbyeongsan Mountain
이칭/별칭 전단산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퇴촌동|동읍 용정리|동읍 단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높이 566.7m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퇴촌동 일원과 동읍 용정리·단계리 일원에 걸쳐 있는 산.

[개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1961년 4월 22일 창원시 봉림동창원시 동읍 용정리정병산(566.7m)으로 고시하였다.

[명칭유래]

정병산은 1934년에 간행된 『영지요선』에 전단산과 함께 정병산(精屛山), 그 후 『창원 군지』(1962)에 정병산(精兵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원 도호부 권역 지명 연구』(민긍기, 2000)에 따르면, 정병산의 ‘정병(精兵)’ 혹은 ‘정병(精屛)’은 ‘증봉(甑峯)’의 현지음(징봉〉정병)과 유사한 한자음 표기로 이해된다.

증봉의 ‘증(甑)’이 ‘시루’이고 ‘증’으로 표기된 산 이름이 거개가 ‘수리·시리·사리’로 불리기 때문에 ‘증’은 수리봉의 ‘수리’를 나타낸 표기일 것이다. ‘수리’는 동(東)을 뜻하는 말로, 창원도호부 동쪽에 있는 산이기 때문에 방위 인식에 따라 수리봉[甑峯]과 같은 이름이 생겨났을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수리봉이 변한 것이 정병산이라고 하였다.

『창원 시사』(1988)에 나오는 ‘오합지졸정병어단산(烏合之卒精兵於壇山)’이란 구절에서 따와 정병산(精兵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은 정병산을 민간 어원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상도 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에 정병산의 또 다른 이름인 전단산(旃檀山)이 나오는데,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자연환경]

정병산천주산에서 뻗어 내려 낙남정간으로 이어진 산이다. 정병산 남쪽 용지봉에서 김해의 여러 산으로 이어져 낙동강에 닿고, 용지봉에서 남으로 갈라진 산맥은 불모산과 장복산맥으로 이어진다. 정병산 서남쪽에 창원천의 발원지인 용추계곡이 있고, 동읍에 속하는 북동쪽 산자락에는 주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창원분지 동북쪽 산맥을 형성하며, 창원시청에서 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있다. 서남쪽은 봉림동·퇴촌동·용동 등이 시가를 이루고 북쪽은 동읍의 여러 마을, 동쪽은 김해시 진영읍과 진례면 일원이다. 남서쪽 산자락에 동읍과 연결 예정인 국도 25호선 연장 공사와 경전철 부설 공사 한창이고, 남쪽 자락에 경상남도청창원 대학교, 산 동쪽 자락에 고찰인 우곡사가 있다. 정병산의 정상은 창원시와 김해시 일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경관을 갖추고 있어 창원시민의 휴양처로 이름이 나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창원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경종"은 이미 별도의 항목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상단의 검색창에 "노경종"을 입력하시면 그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7.02
안** 노경종 [盧景宗 , 1555 ∼ 1625]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交河, 자는 孝誠, 호는 明庵.
창원 지귀동에서 태어난 그는 이조판서 유(瑜)의 10세손이며 弘文校理 廷直의 5세손이다.
어릴 때부터 사려깊고 침착하여 11세에 정병산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다.
芝山曺好益의 문하에서 학문에 침잠하였다. 조호익은 그의 비범함에 감탄했다 한다.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草溪城을 지키고 크게 전공을 세웠다.
왕으로부터 訓練院正을 제수받았으며 정유재란 때도 공을 세웠다. 선조 336년(1673년) 특설무과에 합격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 용양위부호군(龍驍位副護軍)에 이어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광해군 때에 영창대군의 옥사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서 여생을 마쳤다.
내서면 삼계리의 첨두(膽斗)서원에서 향사하고 있다.
2012.06.29
권** 이 백과 사전에 있는 사진과 정병산에 대한내용을 학교 보고서에 사용 하겠습니다.~ 2011.10.16
창****** 정병산이니 봉림산이니 하다가 결국 정병산이 되었다.
정병이란 精兵라는 정말 훌륭한 일본어이고 일본인이
과연 일제시대때 이런 책도 안 보고 이름을 지었을까는
의문이다. 국문학자는 일본어를 모른다. 일문학자는 惡이나
齊이런 한자를 연구하려 하지 않는다.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반목과 질시만 거듭하다가 결국 훌륭하게 병사들이 훈련하는
蒙古襲來의 병참기지 합포가 精兵라는 훌륭한 산 이름을 하나 얻게
되었다. 小倉新平가 저 지하에서 흡족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건
나뿐이가??
201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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