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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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祭祀遺蹟 |
영어의미역 | Sacrificial Rite-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성주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제사 행위가 이루어진 장소로서 물질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곳.
[개설]
선사 및 고대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이나 힘이 자연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기에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 강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제사나 의례와 같은 구체적인 행위로 표출되었는데, 제사와 의례의 모습은 시대와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제사나 의례가 이루어진 장소인 제사 유적, 즉 제장(祭場)에는 행위의 결과만 남게 되는데, 그 물질적인 흔적이 아주 미미하여 당시 제사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형태]
1. 신석기 시대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이동 생활을 주로 하며, 설사 정착 생활을 한다 해도 제사 유적이 남아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유명한 것은 진주 상촌리 유적과 인천 영종도 는들 유적으로, 주위에 도랑을 돌리고 그 안에 돌무지[積石]가 있다. 돌무지 사이에는 토기 편과 석기 편, 숯 등이 포함되어 있어 여기에서 제사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도랑은 신성한 공간을 구분하기 위한 시설이었던 것 같다.
2. 청동기 시대
식량 생산을 위주로 하는 사회는 자연에 대한 의존 정도가 더욱 강하여, 땅의 신인 지모신(地母神)을 비롯하여 물, 바람, 햇빛 등 농업생산과 관련된 자연물을 숭배하였다. 더구나 고인돌과 같은 무덤을 만들게 되면서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조상신(祖上神) 개념도 도입되는 등, 사람들의 인식이 확대되고 제사의 형태나 장소가 다양해졌다.
진주 대평리의 청동기 시대 밭 유적을 비롯한 여러 경작 유적에서는 농경의례가 행해졌고, 산청 묵곡리나 창원 상남동의 하천변에서 물에 대한 제사도 있었다. 물과 관련된 제사는 수원지(水源池)나 우물, 하천과 수로(水路)에서 이루어졌는데, 대체로 농업생산의 풍요를 기원하였다.
김해 봉황동 한옥 체험관 부지에서 출토된 모형 토기들 역시 물과 관련된 제사의 흔적이다.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伽倻津祠)는 삼국 시대부터 낙동강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제사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창원의 덕천리 고인돌 주위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장송의례(葬送儀禮)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창원 남산 유적의 환호 속에는 마을의 경계(境界)에서 이루어지는 제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들 여러 제사에서는 대부분 토기나 석기를 깨는 행위가 많았으며,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모두 깨어지거나 그을음이 있는 상태인 것이 보통이다. 제사 이후 토기나 석기 등의 유물을 깨는 행위는 제사에 한번 사용한 물건은 집으로 가져가서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에 있었던 특별한 형태의 제사로는 청동기 매납(埋納)과 바위그림[岩刻畵]을 들 수 있다. 청동기 매납 유적은 집단의 수장(首長)이 집단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뒤 거기에 사용된 청동기를 따로 묻음에 따라 조성된 곳으로, 마산 가포동 유적이나 산청 백운리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바위그림 역시 당시의 제사와 관련된 것인데,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신(神)의 형상을 바위에 새긴 것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또 사천 이금동 유적에서 발견된 특수한 형태의 대형 건물은 당시의 신전(神殿)으로 추측되는데, 이러한 건물은 남아있는 예가 매우 드문 독특한 사례이다.
[민속 신앙과 관련한 제사 유적]
조선 시대 혹은 근대에 민속 신앙과 관련하여 남아 있는 제사유적으로는 조산(造山), 당목(堂木), 석제단(石祭壇), 알 바위 등이 있다. 조산(造山)은 허한 곳을 막아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한다는 풍수지리 개념으로, 보통 나무를 심거나 돌탑을 쌓거나 혹은 흙을 성토하여 봉분과 같은 무더기를 크게 만들어 둔다. 북면 상천리 봉촌과 내곡리, 동읍 덕산리 등에서 그 예를 볼 수가 있는데, 내곡리와 덕산리의 조산은 동제(洞祭)와도 관련이 있다.
당목(堂木)은 당산나무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정월 보름 등 특별한 날에 당산제와 같은 마을 제사[洞祭]를 지내는 제단이었다. 창원시와 그 주변에서는 지금도 곳곳에 당집과 당목이 많이 남아 있는데, 돌탑이나 돌무더기도 함께 있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지금은 마을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리는 일은 상존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산 할매, 당산 할배 등 관련 전설이 있기도 하다.
창원의 당목과 관련된 마을 제사의 날짜는 정월 대보름, 음력 9월 14일, 음력 10월 1일, 음력 10월 14일, 음력 10월 15일, 음력 12월 중순 등 다양하며 규칙적이지 않다. 당목으로 정해져 있는 나무의 수종(樹種)은 소나무·포구나무·느티나무·참나무·회나무·배나무 등이며, 나무의 나이가 수백 년이 넘어 보호수로 지정된 것들도 있다. 동읍 본포리 당목 등 11개소, 대산면 일동리 당목 외 10개소, 북면 신촌리 등 8개소, 창원시 귀산동 외 11개소 등 40개 이상의 당목이 알려져 있다.
석제단(石祭壇)은 창원 명곡동, 동읍 단계리, 동읍 송정리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고갯마루나 산의 평탄지에 조성되어 있다. 북방식 고인돌처럼 작은 돌을 놓고 그 위에 편평한 돌을 얹어 제단의 형태를 만들었다. 옛날에는 마을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사라진 전통이다.
알 바위 혹은 호박 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들은 그 표면에 성혈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북면 내곡리와 외감리, 동읍 죽동리와 화양리, 창원시 천선동 등에서 알 바위가 확인된다. 조성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며 용도도 모른다. 아들 낳기를 바라면서 바위에 구멍을 파는 기자신앙(祈子信仰) 등의 민간 신앙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