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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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院 |
영어의미역 | Station Guesthou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운영되었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개설]
역은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에게 역마와 숙식 등이 제공되었던 곳이다. 창원도호부에는 자여역(自如驛)·신풍역(新豊驛)·근주역(近珠驛)·안민역(安民驛) 등 네 곳의 역이 운영되었다. 원은 지방 관아 근처나 역 주변 및 각 역과의 중간 지역 등에 설치한 숙박시설이다. 창원도호부에는 선원(禪院)·안민원(安民院)·임견원(臨見院)·감계원(甘界院)·전현원(錢縣院)·의장원(儀仗院)·안성원(安城院)·적옥원(迪屋院)·영빈원(迎賓院) 등 아홉 곳의 원이 운영되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역(驛)은 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숙박 및 공물 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하던 곳으로 참(站)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다 1597년(선조 30) 통신만을 위주로 하는 파발을 두어서 변서(邊書)의 급한 전달을 임무로 하였다. 원(院)은 일반 여객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는 일종의 여관이었다. 그러나 임금이 지방을 순시하거나 피난길에 이용되기도 했으며, 각 도의 관찰사가 고을을 순행할 때 점심을 먹거나 마필을 교체하는 곳으로도 쓰였다. 또한 원은 민심을 파악하거나 고을 수령들에 관한 내사(內査) 자료를 얻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내용]
1. 자여역
자여역은 창원도호부에서 동쪽으로 8㎞ 거리에 있었다. 지금의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승(丞) 1명을 두었는데 역승은 종9품의 벼슬이다. 그 후 중종 때에는 승을 혁파하고 종6품의 찰방(察訪)으로 승격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1510년(중종 5) 승을 혁파하고 찰방을 두었다고 하였다. 본도(本道)에 속한 역이 14역으로 근주(近珠)·창인(昌仁)·대산(大山)·신풍(新豊)·파수(巴水)·춘곡(春谷)·영포(靈浦)·금곡(金谷)·금동(金洞)·생법(省法)·적항(赤項)·보평(報平)·남역(南驛)·안민(安民) 등이다.
자여역은 동쪽으로 김해 생법역까지는 8㎞, 서쪽으로 신풍역까지는 4㎞, 근주역까지는 14㎞, 남쪽으로 안민역까지는 12㎞였으며 북쪽으로 김해 대산역까지의 거리도 12㎞였다. 역에 비치된 큰 말 2필이고, 보통 말 2필, 짐을 부리는 말 14필이었다. 역리(驛吏) 944명, 역노(驛奴) 78명, 역비(驛婢) 37명이었다.
2. 신풍역
신풍역은 창원도호부에서 동쪽으로 4㎞ 거리에 있었다. 지금의 창원시 동읍 용전리에 해당한다. 큰 말 1필, 보통 말 2필, 짐을 부리는 말 9필이었고, 역리 97명, 역비 1명이었다.
3. 근주역
근주역은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6㎞ 거리에 있었다. 지금의 마산시 석전동에 해당한다. 큰 말 1필이고, 보통 말 2필, 짐을 부리는 말 14필이었고, 역리 130명이었다.
4. 안민역
안민역은 창원도호부에서 남쪽으로 10.8㎞ 거리에 있었다. 지금의 창원시 안민동에 해당한다. 보통 말 2필, 짐을 부리는 말 5필이었고, 역리 98명, 역노 8명, 역비 2명이었다.
[변천]
창원도호부 내의 원 9곳 중 안민원을 제외한 나머지 원들은 『경상도읍지』가 편찬되는 1832년(순조 32)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안민역 곁에 있었던 안민원은 역참(驛站)이 폐지되는 1895년(고종 32)까지 존속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