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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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林氏三代孝子碑 |
영어의미역 | Dutiful Son Monument of Three Generations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용강리 48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배상현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에 있는 나주임씨 삼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조선 후기 정려비.
[개설]
나주임씨 삼대효자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에 사는 임성립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머니가 병이 나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특효약을 구하던 중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도와주어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온갖 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고 고기는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임성립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 또한 아버지 임성립에 못지않게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임성립이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임성립의 입에 넣어 줌으로써 수명을 연장시켰다. 임성립이 죽자 두 아들 또한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고기를 일체 먹지 않았다고 한다.
임윤국은 임빈의 아들이자 임성립의 손자가 되는데, 임윤국 또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아버지 못지않게 효성이 지극하니 이 사실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효자비를 세워 그 효행을 기리게 하였다고 한다. 나주임씨 삼대효자비와 관련하여 경상남도 창원시 일대에 「용강리 효자각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건립경위]
나주임씨 삼대효자비는 임성립·임빈·임윤국의 삼대에 걸친 효행을 기려 후세에까지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서 세운 것이다.
[위치]
나주임씨 삼대효자비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용암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회관과 길을 사이에 두고 서 있다.
[형태]
왼쪽부터 임성립의 비, 임빈의 비, 임윤국의 비 순으로 나란히 서 있다. 각기 지붕돌(가첨석)이 있으며 양쪽으로 기둥을 세우고 상단에 글자가 새겨진 돌판을 끼운 정려문의 형태이다. 나주임씨 삼대효자비의 전체적인 규모는 임성립의 비가 너비 53㎝, 높이 115㎝이고, 임빈의 비가 너비 51㎝, 높이 100㎝이며, 임윤국의 비가 너비 57㎝, 높이 90㎝이다. 빗돌을 중심으로 하면 임성립의 비가 너비 53㎝, 세로 34㎝이고, 임빈의 비가 너비 51㎝, 세로 37㎝이며, 임윤국의 비가 너비 57㎝, 세로 32㎝이다.
[금석문]
임성립의 비에는 ‘고효자학생나주임성립지려(故孝子學生羅州林星立之閭)’, 임빈의 비에는 ‘효자학생임빈지려(孝子學生林彬之閭)’, 임윤국의 비에는 ‘효자학생임윤국지려(孝子學生林潤國之閭)’라 새겨 놓았다. 연대가 표기된 것은 임성립의 비가 유일한 데 좌측 하단에 ‘무오칠월일(戊午七月日)’이라 하였다.
[현황]
나주임씨 삼대효자비는 1738년 처음 세워졌는데, 현재의 형태로 단장이 된 것은 1977년 4월의 일이다. 이때 너비 440㎝, 세로 100㎝, 높이 60㎝ 크기의 시멘트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3기의 비석을 나란히 세웠다. 나주임씨 삼대효자비의 우측에 나주임씨 문중에서 묘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한 제단(祭壇)이 있다.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용암마을의 나주임씨들은 대부분 타지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매년 10월 나주임씨 삼대효자비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