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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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石奇 |
영어음역 | Hwang Seokgi |
이칭/별칭 | 공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배상현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황석기(黃石奇)의 본관은 창원(昌原). 창원황씨 공희공파(恭僖公派) 파조(派祖)이며, 아들은 황상(黃裳)이다.
[활동사항]
황석기는 충혜왕비인 원나라의 덕녕공주(德寧公主)를 따라와서 충혜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겼다. 1342년 밀직사지신사로 조적(曺頔)의 무리를 제거하고 왕을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갱일시독제(更日侍讀制)를 채용하였으며, 46명의 서연관을 임명할 때 지밀직사사로 참여하였다. 1349년 충정왕이 즉위하면서 도첨의참리에 임명되었다.
1356년(공민왕 5) 5월 기철(奇轍) 일파가 역모를 꾀했을 때, 밀직 경천흥(慶千興), 판사 신청(申靑) 등과 함께 기철을 빨리 제거할 것을 건의하여 거사 직전에 봉쇄한 공으로 찬성사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관제를 복구할 때 문하평장사에 임명되었으며, 1358년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에 이르렀으나 다음 해 정월 파직되었다. 문장에도 뛰어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사(辭)가 전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1349년 회산군에 봉해졌으며, 이 내용이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사후에 공희(恭僖)라는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