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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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湖齋 |
영어의미역 | Geumhojae Pavilion for Purificati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금산리 41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순강 |
성격 | 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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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목조와가 |
건립시기/일시 | 일제강점기 |
정면칸수 | 5칸 |
측면칸수 | 3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418 |
소유자 | 김해김씨 판서공 불비파 |
관리자 | 김해김씨 판소공 불비파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해김씨 판서공 불비파 종중 재실.
[개설]
금호재는 판서공 불비파 후손들이 1924년에 파시조인 김불비(金不比)와 그 아들 환성헌(喚惺軒) 김수광(金秀光), 손자 김석공(金錫貢)·김석근(金錫根), 증손 김맹손(金孟孫) 등의 묘소 근처에 건립한 재실이다. 여말선초의 문신인 신묵재(愼默齋) 김불비는 창원시 동읍 산남리에서 출생하여 포은 정몽주의 문인이 되었다. 학문을 성취하니 국내에서는 그의 학문에 비견할 사람이 없다하여 불비(不比)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관직으로는 봉상대부(奉常大夫)·전리총랑(典理摠郞)·보문각직제학·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재실의 동쪽 구릉에는 김불비의 내외 묘와, 손자 김석근·김석공 내외의 묘소가 있고, 재실의 후면 구릉에는 김석공의 부인인 숙인전주이씨 묘와 신묵재의 증손자인 김맹손 내외의 묘가 있다.
[위치]
동읍의 읍사무소에서 지방도 30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6.5㎞ 지점에 금동버스정류장이 있다. 이 근처에 금호재의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는데 ‘금호재(琴湖齋)’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서쪽으로 약 700m 더 들어가면 금호재가 있다.
[변천]
1924년에 건립되었다가 1977년에 1차례 중수가 있었다. 중수 후의 현황은 정당인 금호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였으며, 평면 형태는 중앙에 마루를 2칸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었다. 그리고 솟을대문과 좌우에 익사인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배치하였고, 재실의 동쪽에 판서공과 그 후손의 제단비를 세운 제단이 있었다. 현재는 본당과 솟을대문은 새로 중창되어 원형을 알 수 없고, 서무는 철거되었다. 다만, 제단과 동무만 일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형태]
본당과 솟을대문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본당의 오른쪽에는 제단과 동무가 있다. 금호재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평면 형태는 3칸 온돌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이 배치된 중당협실형이다. 구조는 가공한 석재를 사용하여 층으로 쌓은 기단 위에 가공한 초석을 올린 다음 원주을 세웠다. 건축형식은 소로수장집이며, 도리는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며, 암수막새 기와를 사용하여 마감하였다.
[현황]
금호재는 신묵재의 묘소에서 서남쪽으로 약 50m 정도 지점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와 금호재 사이에는 김불비 유허비와 김수광 묘도비가 있다. 묘제는 음력 10월 상정일(上丁日)에 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창원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와 그 후손의 묘역에 건립된 금호재는 전형적인 재실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특징으로는 제단를 부가한 것이다. 이는 시제의 절차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새로 중건되어 원형을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